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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5월 5일: 119년 전,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개교

해양맨 2024. 5. 5. 00:00

역사 속 오늘, 5월 5일에 일어난 일: 

1821년 -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가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 중 사망하다.

1905년 - 이용익이 보성전문학교를 세우다.
1945년 - 자유 러시아군단(러시아 해방군)과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가 프라하 봉기를 일으키다.
1956년 -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하다.
2007년 - 카메룬 남부에 케냐 항공 737-800기가 추락하여 탑승객 114명 전원 사망.

 

오늘의 묵상: 보성전문학교 개교

1905년 5월 5일, 119년 전 오늘, 이용익이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웠습니다.

 

탁지부대신(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며 군부대신이었던 이용익은 임오군란 당시 민비를 등에 업고 도망가 살려 낸 인물입니다. 그는 고종과 민비의 비호로 많은 부를 쌓았지만, 매국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납치되었다가 귀국한 이듬해, 교육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보성전문학교를 창설했습니다. 보성전문학교는 순수하게 조선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민족 최초의 근대적 사립고등교육기관이었습니다.

 

보성(普成)이라는 교명은 고종이 직접 하사한 것으로, 普(보)는 '넓다', '두루', '보통'을 뜻하므로 '널리 두루 이룬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보성전문학교.

 

이용익이 항일운동을 하다 1907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피살된 후 경영난에 봉착하자 1910년 천도교의 손병희가 인수했으나 일제 총독부의 지나친 간섭과 물가의 변동, 재단 경영의 부진 등으로 1932년에 김성수가 다시 인수하게 됩니다. 부호 김성수는 이보다 앞서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조직하여 육영사업에 힘써 왔는데, 또다시 거액의 사재를 들여 보성재단을 확충하였습니다.

그는 민립대학의 꿈을 펴기 위해 1934년 안암동 교사로 신축 이전함으로써 점차 일제 식민지하의 민족 고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다가 해방 후인 1946년 8월 15일 고려대학교로 개칭하였습니다.

 

인촌 김성수

인촌 김성수는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하였고, 1915년 중앙학교,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1946년 고려대학교로 개편하고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으며, 1951년에는 제2대 대한민국 부통령을 역임하였습니다. 당시 최대 지주였던 김성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에 적극 동참하였지만, 이승만 정부와 틀어지면서 반독재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사후인 1962년에 건국공로훈장 복장(현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으나, 2009년에 친일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함에 따라 2018년에 서훈이 취소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 말 친일 기고문과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발기인과 활동했다는 점, 총독부 어용기관지 <매일신보>, <경성일보>, 잡지 <춘추> 등에 학병 권유문을 수 차례 기고했을 뿐만 아니라 담화문 및 연설 등을 수 백 차례 했다는 점, 그리고 일제에게 국방헌금을 여러 차례 납부했던 점 등입니다.

 

2018년 3월 8일 고려대 총학생회가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고 인촌기념관과 인촌로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결국 2019년 2월 27일 '인촌로'는 '고려대로'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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