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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7월 9일: 925년 전, 제1차 십자군 예루살렘 입성

해양맨 2024. 7. 9. 06:10

역사 속 오늘, 7월 9일에 일어난 일:

1099년 -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입성

1816년 -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77년 - 제1회 윔블던 선수권 대회 개최
1955년 - 핵전쟁에 의한 인류멸망의 위기를 경고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발표

1987년 - 학생 운동가 이한열의 장례식이 열림
2020년 -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실종되었고, 익일 0시 1분경 시신으로 발견됨

 

오늘의 묵상: 십자군 원정

1099년 7월 9일, 925년 전 오늘, 15,000명의 굶주린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세계 3대 종교의 중심지인 성지 예루살렘은 오랜 시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나 7세기를 전후로 이슬람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게 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셀주크투르크라는 유목민족은 영토를 확장, 중동으로 진입, 페르시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등 대부분의 중동전역을 손에 넣었습니다. 당연히 팔레스티나 지방에 있던 예루살렘도 이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당시 쇠약해진 비잔틴제국도 상당수의 영토를 셀주크투르크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이슬람군대는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의 바로 코앞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당시 비잔틴제국의 정치적 수장이었던 알렉시오스 1세는 큰 위험을 느끼고 수백 년간 시리아, 페르시아 등 등과 함께 이어져온 중동의 힘의 균형이 셀주크투르크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게 되자 라이벌이자 형제(같은 종교)나 마찬가지인 비잔틴의 교황 우르바노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알렉시오스 1세는 비잔틴제국의 요충지를 방어할 수 있게 300명의 정예기사를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지만, 교황은 차제에 각 지역의 왕과 봉건영주들을 자신에게 무릎 꿇게 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클레르몽교의회에서 수만의 기사, 귀족, 농민들 앞에서 십자군을 일으켜 성지를 되찾자라는 연설을 합니다. 이 연설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은 교황의 십자군원정에 동참하게 되면서 수백 년간의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습니다.



클레르몽교의회에서 교황의 연설이 있은지 1년 후인 1096년 드디어 역사적인 1차 십자군원정이 시작되어 1999년 7월 9일, 15,000명의 굶주린 제1차 십자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1270년까지 274년간 이어진 십자군의 원정은 실패로 끝납니다. 그 이유는 종교적 순수함이 아닌 각 이해집단의 정치적, 경제적인 이익추구가 앞섰고, 원정군이어야 했던 십자군은 물적, 인적 부족함을 결코 메꿀 수 없었으며, 계속된 패배로 교회의 권위가 추락하며 종교자체에 대한 맹신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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