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인물이 되기를 꿈꾸는 모든 자들에게... 자세히보기

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7월 12일: 115년 전, 기유각서 체결

해양맨 2024. 7. 12. 00:00

역사 속 오늘, 7월 12일에 일어난 일:

1762년 -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사망

1806년 - 나폴레옹, 라인 동맹 창설
1909년 - 기유각서 체결

1933년 - 미국 의회가 미국에 첫 번째 연방 최저 임금 법 통과
1948년 - 대한민국 제헌 국회가 대한민국의 헌법 의결 (7월 17일 공포됨: 제헌절)

2006년 - 이스라엘 방위군의 레바논 침공 시작
2012년 -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으로 22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함

 

오늘의 묵상: 기유각서

1909년 7월 12일, 115년 전 오늘, 기유각서가 체결됐습니다.

 

대한제국 사법 및 감옥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 통칭 기유각서는 1909년 7월 12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감옥사무(교도행정)에 관한 업무를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조약입니다.

이 조약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실권이 대한제국 조선 주재 일본 통감에 의해 전격 박탈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의 사후 처리를 위해 조선과 일본의 에도 막부가 1609년에 체결한 기유약조와는 다른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인 친일파 이완용과 일본의 제2대 한국 통감으로 발령받았던 소네 아라스케 사이에 맺어졌습니다. 이로써 일본 제국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정치적 권력을 강탈했으며 사실상 대한제국은 정식적인 멸망을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각서에 의해 한국의 법부와 재판소는 폐지되었고, 사무는 통감부의 사법청에 이관되어 우리나라의 사법권은 완전히 일본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항일 지사들에 대한 재판에 있어서 일본인의 권한은 증대되었고, 특별법을 자의로 만들어 더욱 철저하게 우리의 항일 투쟁을 억압하게 되었습니다. 기유각서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탄 하는 전초 공작이었습니다.

 

독립기념관 소장 기유각서. 설명문에는 1909년 7월 13일로 되어있는데 각서에는 7월 12일 체결한 것으로 되어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