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과 공정 차이
'공평(Equality)'과 '공정(Equity, Justice)'은 같은 뜻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 공평은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않고 고름'을 의미하고,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의미한다. 즉, 공정은 공평을 포괄하고 있다.
공평은 성별이나 나이, 신체조건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것이라면, 공정은 각자의 조건들을 고려하여 차등적으로 기회를 주더라도 (가능하면) 모두가 동등한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한 사회가 공평한 사회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높은 울타리가 시야를 가리는 야구장에서 키가 다른 아이 세명에게 야구경기를 볼 수 있도록 받침대로 쓸 상자를 나눠줄 때, 키와 상관없이 아이 세명 모두에게 똑같은 상자를 나눠주는 것은 공평하다. 가장 키가 작은 아이가 여전히 야구경기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것은 공평한 조치이다.
하지만 모두가 야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키를 고려해, 없어도 되는 사람에겐 상자를 주지 않고,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 많이 준다면 이는 공정한 조치인 것이다.
공정은 공평에 올바름, 정의, 혹은 양심이 가미된 성숙된 가치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공평을 보장하는 제도적 틀을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공정을 실현하여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사실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정을 추구하며 누진세나 복지 정책 등을 통해 경제적 격차를 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23년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최재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공정은 가진 자의 잣대로 재는 게 아닙니다. 재력, 권력, 매력을 가진 자는 함부로 공정을 말하면 안 됩니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켜 줍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번드레하게 공정을 말하지만 너무나 자주 그대로 실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세상에서는 종종 무감각한,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밀어붙이는 불공정한 공평이 아니라,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이 우리 사회의 표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