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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8월 19일: 27년 전, 대북 경수로 사업 착공

해양맨 2024. 8. 19. 00:00

역사 속 오늘, 8월 19일에 일어난 일: 

1934년 - 독일, 국민투표 통해 아돌프 히틀러를 총통으로 선출

1948년 -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
1980년 - 사우디아라비아항공 163편이 킹 칼리드 공항에서 화재 사고로 탑승객 301명 전원 사망

1997년 - 한반도 에너지 개발 기구, 대북 경수로 사업 착공식 개최
2011년 - 대한민국 경찰관들에게 개인 전용 총기가 지급됨

 

오늘의 묵상: 대북 경수로 사업

1997년 8월 19일, 27년 전 오늘, 대북 경수로 사업 착공식이 개최되었습니다.

 

먼저 경수로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타입에는 냉각과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는 감속재의 역할로 물을 사용하는데, 물의 무게에 따라 경수로중수로가 있습니다. 산소(O)와 수소(H: Hydrogen)가 결합하면 우리가 보통 쓰는 가벼운 물(경수)이 되고, 산소(O)와 중수소(D:Deuterium)가 결합하면 무거운 물(중수)이 됩니다. 

 

경수로는 저농축 우라늄을 쓰는 반면 중수로는 천연 우라늄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중수로는 우라늄을 농축하는데 드는 비용은 들지 않지만, 대신 값이 비싼 무거운 물만 골라 사용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또 중수로는 원자로의 작동을 정지하지 않고 핵연료를 교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경수로에 비해서 발전소의 덩치가 크고 핵연료를 자주 갈아줘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 21기 가운데 17개는 경수로형 원자로입니다.

 

만성 전력난에 시달려온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김일성 주석 생전의 필생 사업이었습니다. 1980년대 소련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실험용 원자로를 들여왔으나 1989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소련과의 원전 건설 추진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북한은 1990년대 들어와 국제사회로부터 핵개발 의심국가로 지목되어 핵사찰 압력에 직면하자 핵시설의 동결에 대한 보상으로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요구했습니다. 세계 핵질서를 주도하고 있던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북한과의 핵협상을 추진하여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 핵동결의 대가로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약속하였습니다.

 

합의의 주요 내용은 북한에 핵에너지를 이용하여 200만 KW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1천 MW급 경수로 2기를 2003년까지 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경수로를 선정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원자로에 비해 핵무기 제조가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1995년 경수로건설을 추진하기 위하여 한국, 미국, 일본 3개국이 뉴욕에 모여 ‘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KEDO)’를 출범시킵니다. 경수로 건설비용(46억 달러로 추정)의 70%는 한국, 10억 달러(약 20% 정도)는 일본, 나머지 10%는 유럽연합(EU)이 부담하기로 하고, 미국은 중유비용 및 KEDO 소요재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1997년 8월 19일,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에서 대북 경수로 사업 착공식을 시작으로,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 설비를 한국형으로 표기하는 것 등으로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사업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2000년 3월 당시 공개된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 경수로 건설 공사 현장 모습.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양화항의 경수로 기자재 하역장/ 발전소 부지 유류 저장고/ 공업용수관 매설작업/ 도로공사.

 

그러다가 2001년 미국에 부시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제네바합의는 재검토의 대상으로 전환되고 북한도 핵개발로 대응하면서 경수로 건설사업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부시행정부의 압박전략에 대응하여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시인함으로써 촉발된 2002년 10월 '북핵 2차 위기', 즉 고농축우라늄(HEU) 핵프로그램 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미국은 그해 12월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하게 됩니다.

결국 2003년 12월, KEDO는 대북 경수로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의하고, 2005년 11월 22일 미국과 KEDO는 경수로 건설을 전면 중단키로 최종 결정합니다. 그리고 2006년 1월, 북한 금호지구에 남아 있던 인력 57명이 모두 철수함으로써, 북한 신포 경수로 건설사업이 사실상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KEDO는 2006년 6월 1일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 중단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1995년 12월 KEDO와 북한 간 경수로 공급협정이 체결된 후 10년 6개월, 1997년 8월 착공식을 가진 후 8년 10개월 만의 일입니다. 이른바 제1차 북핵위기를 봉합하는 북미 기본합의(제네바합의)에 따라 탄생한 KEDO 경수로가 함남 금호지구에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덩어리만 남긴 채 그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은 11억 3천700만 달러, 일본은 4억 700만 달러, 유럽연합(EU)은 1천800만 달러의 공사비를 투입했으며 최종 공정률은 35%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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