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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8월 21일: 29년 전,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 37명 사망

해양맨 2024. 8. 21. 00:00

역사 속 오늘, 8월 21일에 일어난 일: 

  673년 - 신라 김유신 장군 사망
1866년 - 평양 군민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다 (신미양요의 원인)
1957년 - 소련이 첫 대륙간탄도유도탄인 R-7 세묘르카 로켓의 장거리 시험 발사에 성공
1959년 - 아이젠하워 이 대통령이 하와이를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하는 법안에 서명
1988년 - 네팔에서 규모 6.9의 지진이 발생하여 최소 709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
1995년 - 경기도 용인군 경기여자기술학원 기숙사 방화로 37명이 사망하고, 16명 부상

 

오늘의 묵상: 경기여자기술학원 기숙사 방화 사건

1995년 8월 21일, 29년 전 오늘, 경기도 용인군 경기여자기술학원 기숙사 방화로 37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사고 원인은 학원에서 가혹행위 등을 당하던 원생들의 고의적인 방화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경기여자기술학원은 비행 청소년, 소년범, 고아 등을 수용하고 미용, 한복, 양재, 자수, 요리 등 직업훈련을 시키는 갱생시설로, 1962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상봉리에 있었던 국립부녀보호소를 경기도청이 인수 후 도립으로 전환했습니다.

 

1969년 '경기여자기술학원'으로 바꾼 뒤 198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자선사업재단이 위탁운영을 시작했고, 1991년에는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에 도비 26억 원을 들여 새 건물을 세워 이전했습니다.

 

화재 진압 후 경기여자기술학원 기숙사 모습.


이곳은 1980년대 전반에는 매춘 여성들을 수감하던 장소였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는 무단가출 및 비행을 일삼는 10대 소녀들이 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입교하는 문제소녀들의 갱생기관이 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기술원 전체 원생 수는 138명이었으며, 1962년 이래 33년 동안 이곳을 거친 원생 수는 4,985명이고 자격증 취득자는 1,018명이었습니다.

학원 측은 말을 듣지 않는 원생들에게 구타/욕설 등을 하거나 편지를 검열하고 기숙사 문과 창문에 쇠사슬과 쇠창살을 설치하는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일삼았으며 담장에 철조망 및 전자감응식 장치를 설치했습니다. 게다가 학교 외부에는 경비견과 청원경찰을 배치하여 원생들의 탈주를 감시했습니다. 

이러한 문제 탓에 1994년 1월에는 시설 측의 강압적 교육에 불만을 품은 원생 2명이 방화 후 탈주하려다 경찰에 구속된 바 있었고, 1995년 8월 21일에는 일부 원생들이 사감을 인질로 잡아 포박시키고 방화를 저지른 뒤 탈주하려 했으나 8개 방에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번지는 바람에 2층 기숙사에 있던 학원생 37명이 질식사했고 1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특히 기숙사 출입문을 잠그고 쇠창살로 기숙사 창문을 막은 것이 화재의 피해를 더욱 확대시킨 원인이 되었습니다. 불이 나자 직원이 문을 열어 주어 1층의 원생들은 다 구출되었지만, 2층은 사감이 탈출한 후 뒤, 문이 저절로 잠겼는지 아니면 일부러 잠근 건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2층에 있던 원생들 대부분이 그곳에 갇힌 채 질식으로 죽어갔습니다.    

 

 

 

이 화재 사건 이후 해당 시설은 무기한 폐쇄되었다가 1997년에 경기광역새일센터가 들어섰다가 현재는 경기광역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경기도일자리재단 남부사업본부, 경기도여성능력센터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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