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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1월 5일: 247년 전, 정조의 규장각 설치

해양맨 2023. 11. 5. 00:00

역사 속 오늘, 11월 5일에 일어난 일:

1688년 - 영국 명예혁명.
1757년 - 7년 전쟁 중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로스바흐 전투에서 프랑스-신성로마제국 연합군을 격파.

1776년 - 정조가 규장각 설치.

1906년 - 폴란드 출신의 물리학자, 화학자, 수학자인 마리 퀴리가 여성 최초로 소르본 대학교의 강의를 맡다.
1914년 - 제1차 세계 대전: 영국-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 키프로스 합병 선언.
1916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1924년 - 선통제, 자금성에서 축출되다. (베이징 정변)
1962년 - 대한민국, 제5차 개헌안(대통령중심제-단원제) 공고.
1970년 - 춘천호(의암댐)서 나룻배 전복. 승객 59명 중 31명 익사.

 

오늘의 묵상: 규장각

1776년 11월 5일, 247년 전 오늘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했습니다.

 

세종 대왕에게 집현전이 있었다면 정조에게는 규장각이 있었습니다. 규장각(奎章閣)은 조선 후기의 왕실 학문 연구 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으로, 역대 임금의 글과 책을 보관하는 곳으로 창덕궁 후원(비원)에 세워졌습니다. 여기에서 조선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나랏일을 계획하고 조선의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집현전을 통하여 세종 대왕이 조선의 기초를 만들었다면, 정조는 규장각을 통하여 기울어져 가던 조선을 다시 바로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이 깊은 신하들을 모아 정사를 토론케 하며 민생을 살피게 하면서, 노론들의 권력기구인 비변사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도록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과거 시험의 주관과 문신 교육의 임무까지 부여하고, 많은 책을 편찬케 하였습니다.

 

당시 차별받던 서얼도 규장각 검서관(도서 관리관)이 될 수 있었으며, 박제가는 '북학의', 유득공은 '발해고', 이덕무는 '청장관전서' 등을 남겼습니다. 암행어사로 활약하며 환곡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바로잡은 이서구, 꿈의 도시 화성을 완성한 정약용, 풍속화의 대가로 유명한 김홍도 등 모두가 규장각 소속이었습니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 주변에 세워진 규장각.

 

1782년에 강화도의 외규장각이 완성되자 원래의 규장각을 내규장각으로 부르고, 서적을 나누어 보관하도록 하였는데, 1866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외규장각이 소실되고, 서적들은 프랑스로 약탈되거나 불에 타버렸습니다. 내규장각은 1910년 경술국치로 폐지되었다가 해방 이후에 일부 남아 있는 자료는 서울대학교 규장각(現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으로 이관되었습니다.

 

규장각과 한국문화연구소 두 기구를 통합한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연구에 기초자료가 되어온 규장각 도서 이외에 17만 5천여 책의 고도서, 5만 여점의 고문서 등 총 32만 여점의 자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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