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1월 3일에 일어난 일:
1839년 - 광동에서 청군과 영국군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했으며 이는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18년 - 킬 군항의 반란이 발생, 독일 11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1929년 -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1974년 - 서울 대왕코너 화재사고로 88명 사망하다.
2016년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최순실이 구속되었다.
오늘의 묵상: 광주학생 항일운동
1929년 11월 3일, 94년 전 오늘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시작됐습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항일 운동은 1919년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이자 일제강점기 최후의 전국적 항일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호남선 통학열차에서 일본 학생이 한국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는 희롱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일 학생 간 패싸움이 있었는데 억울하게 한국학생만 일본 경찰에게 제지당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한국인 학생들이 많이 다니던 광주고보(현 광주일고) 재학생 400명 중 70명, 일본인 학생들이 주로 다니던 광주중(현 광주고) 재학생 400명 중 100명이 열차통학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교육도시 광주로의 기차 통학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한국 학생들의 수모와 차별대우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1929년 11월 3일의 학생운동은 달랐습니다. 이 날은 메이지유신을 기념하는 명치절이 겹치는 일요일이었는데, 일본제국은 학생들에게 등교할 것과 신사참배를 요구했습니다. 광주고보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다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신사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광주중 일본 학생 14명과 광주고보 학생 8 명간에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학교 간의 전면적인 패싸움으로 번졌습니다. 가까스로 교사들과 경찰, 소방대원까지 동원되며 사태는 진정되었으나, 이후에 광주의 여러 학교의 학생들은 '조선독립만세',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일제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주시내를 행진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광주 학생들의 항일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되었는데, 전국 320여 학교에서 54,000여 명의 학생이 동맹휴교와 시위에 참여했으며, 그 여파로 582명이 퇴학, 2,330여 명이 무기정학, 298명이 강제 전학을 당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광주학생 항일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학생들의 자율 역량과 애국심을 함양시키기 위하여 매년 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학생독립운동은 3·1 만세 운동, 6·10 만세 운동과 함께 국내 3대 독립운동 중 하나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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