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인물이 되기를 꿈꾸는 모든 자들에게... 자세히보기

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월 24일: 김좌진 장군 암살

해양맨 2024. 1. 24. 00:00

역사 속 오늘, 1월 24일에 일어난 일:

1930년 - 김좌진 장군 암살.

1963년 - 남북체육회담 최초 개최
1972년 - 일본군 패잔병 요코이 쇼이치 발견
2011년 - 러시아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 폭탄테러로 35명 사망, 180명 부상.

2019년 -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전직 대법원장 양승태 구속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
2020년 - 튀르키예 동부에서 규모 6.8의 지진으로 최소 41명 사망, 1,600명 이상 부상.

 

오늘의 묵상: 김좌진 장군

1930년 1월 24일, 94년 전 오늘,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했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독립군 무장투쟁사 가운데 가장 큰 승리인 청산리대첩의 영웅입니다. 10년 넘게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독립운동 조직을 이끌다가 1930년 오늘 중국 헤이룽장(흑룡강) 성 하이린(해림) 시 산시역 근처 한족 총연합회가 운영하던 정미소에서 조선공산당원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김좌진의 암살 동기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좌진이 공산 조직의 침투를 막으려 하자 공산단체 적기단이 비밀단원 박상실을 시켜 암살한 뒤 '김좌진이 친일파로 변절해 처단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합니다.

 

김좌진 장군의 고향인 충남 홍성에 세워진 동상.

 

청산리전투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이 1920년 10월 21일부터 6일간 중국 지린(길림) 성 허룽(화룡) 현 일대에서 10여 차례에 걸쳐 일본군을 대파한 싸움입니다. 당시 일본군 전사자가 연대장 1명, 대대장 2명을 포함해 1천257명이고 부상자는 200여 명이며,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자 130여 명, 부상자 220여 명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김좌진 장군은 어이없게도 같은 민족의 손에 죽어가야만 했습니다.

 

중국 지린성 허룽시에 있는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