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2월 28일에 일어난 일:
1922년 - 이집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7년 - 중화민국의 타이완에서 2·28 봉기(혁명, 사변) 발생.
1960년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에서 2·28 학생의거 발발.
2022년 - 우크라이나에 있던 소련의 초대형 화물기 안토노프 An-225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파괴됨.
오늘의 묵상: 2·28 학생의거
1960년 2월 28일, 64년 전 오늘, 대구에서 2·28 학생의거가 일어났습니다.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여 대구시에서 일어난 학생의거로, 2·28 의거는 이후 3·15 마산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1959년 이승만이 불출마선언을 뒤집고 4선 출마를 표명하면서 자유당정권은 당을 중심으로 중앙 및 지방 정부, 청년단체 등 외곽조직을 장악하여 치밀하게 총선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지병으로 사망하여 단일후보가 된 이승만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적이었지만, 같은 당인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고삐를 늦출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부통령도 대통령과 같이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했으므로, 만약 야당에서 부통령이 나오면 여당 대통령이 적지 않은 제약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 3월 15일 대선을 보름 앞둔 2월 28일 (일요일)에 있을 야당인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대구 유세장에 인파가 몰릴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에게 등교 지침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일요일 등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 알아차렸고, 이에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품고 몇몇 고등학교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모여 대응책을 논의했습니다.
2월 28일, 일요일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이 '일요일 등교'를 거부하고, 대구 반월당 백화점을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커졌고, 도중에 유세장으로 가던 장면 박사를 만났을 땐 '만세'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북 도지사는 학생들에게 "이놈들은 전부 공산당"이라고 말했지만, 시민들은 구타당하는 학생을 경찰에게 달려들어 말리며 학생들의 시위를 응원했습니다.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시위에 참여한 1,200여 명의 학생 중 12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경찰은 시위가 번질 것을 우려해 주동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을 석방하면서 시위는 마감됐습니다.
2.28 운동은 고교생들이 주체이고, 계획적 조직 시위의 민족운동 요건을 갖춘 학생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은 1926년 6·10 만세운동,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이은 의거로 전후 학생 운동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특히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으며, 한일 수교 반대와 그 이후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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