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3월 22일에 일어난 일:
1897년 - 주한미국전권공사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에 의해 경인선 기공.
1938년 - 삼성그룹의 시초인 삼성 상회가 설립됐다.
1962년 - 윤보선 대통령이 하야했다.
1967년 - 대우그룹이 창립되었다.
2016년 - 벨기에 브뤼셀 국제공항에서 두 차례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34명 사망, 250명 부상.
오늘의 묵상: 윤보선 대통령 하야
1962년 3월 22일, 62년 전 오늘,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이 하야했습니다.
충청남도 아산 출신인 윤보선은 3·1 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21세에 최연소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영국 유학을 떠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고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1932년 귀국한 후 조선총독부의 요시찰 인물이 되어 칩거하다가, 민중일보를 인수해 사장이 되었고, 광복 후 한민당 창당에 참여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지명으로 서울특별시장과 상공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1952년 발췌 개헌을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과 결별하고 야당의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4.19 혁명 후 제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헌정 사상 유일한 의원 내각제 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하였습니다. 의원내각제 체제 속에서 윤보선 본인은 상징적 국가원수로 옹립된 것이기에 제2공화국의 실권자인 장면 총리에게 인지도면에서 밀렸습니다. 더욱이 구파인 윤보선 대통령과 신파인 장면 총리는 내각 조직과 국정운영 과정에서 대립하면서 국정혼란을 자초하였는데, 이것이 결국 1961년 5·16 군사혁명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내각이 총사퇴하며 무력화된 후에도 윤보선은 1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하다가 1962년 3월 22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게 됩니다. 실제로 군사정변 이틀 후 윤보선은 스스로 하야를 발표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하야를 번복합니다. 그 이유는 박정희의 군사정부가 아직 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헌법기관인 윤 대통령이 하야하면 외교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릴 것을 우려한 쿠데타 세력의 만류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윤보선은 1963년 민정이양을 위한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제1야당 후보로 출마해 박정희와 정면대결하여 1.5%가량 차이로 석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직 대통령이었음에도 같은 해 제6대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다시 야당을 이끌었습니다.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현직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를 상대로 다시 대결하였으나 2위에 그친 뒤, 유신정권하에서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김대중, 함석헌 등 재야지도자들과 함께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등 민주화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다가 1980년 정계에서 은퇴하고, 1990년 92세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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