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8월 16일에 일어난 사건은:
1653년 - 네덜란드의 선원 헨드릭 하멜 일행이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도착
1819년 - 영국, 런던의 성 피터 광장에서 피털루 학살 발생
1895년 - 나가사키, 부산 간 해저전선 완성
1948년 -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에 정권 이양
1949년 - 대한민국, 세계보건기구(WHO) 가입
1952년 - 임진왜란시 이치전투 승리
1960년 - 키프로스의 독립 및 승인
1980년 - 최규하 대통령, 대규모 학생 소요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10대 대통령에서 하야
1990년 - 걸프 전쟁: 미국 해군, 이라크 및 이라크가 점령한 쿠웨이트 일대 해상 전면 봉쇄
1999년 - 대우 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수정약정 체결(그룹해체)
2005년 - 웨스트 캐리비안 항공 708편이 베네수엘라에서 추락하여 탑승객 160명 전원 사망
오늘의 묵상: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은 이치전투
1952년 8월 16일, 431년 전 오늘, 임진왜란 때인 선조 25년, 권율·황진 등이 전주 동편 이치에서 왜군을 물리쳐 전라도를 사수하고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은 결국 조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1592년 4월 13일에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경상도를 거쳐 5월 3일에 한양을 점령하고, 6월 14일에는 평양을 점령했습니다. 한양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줄 알았던 일본은 전쟁이 장기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조선을 분할통치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여 전라도 침공을 감행하게 됩니다.
전라도 진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은 전주 또는 충청도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치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치는 전라북도 완주와 충청남도 금산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전주로 이동할 수 있는 주요 통로입니다.
당시 이치에는 전라도 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거느린 관군 1,500명이 있었고, 일본군은 일본 최고의 장수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가 거느린 별군 2천 명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전주 침입을 막기 위한 웅치와 금산전투에서 아군이 비록 패하였지만, 이치전투에서는 끝내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치전투에서 황진이 총을 맞고 쓰러지며 한때 사기가 떨어졌으나 권율이 장병을 독전하여 일본군을 격퇴시켰습니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호남 곡창지대가 보존되어 후방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이 임진년에 패한 전투가 세개인데 그중 이치전투를 첫째로 꼽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산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을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지만 일본은 행주전투보다 이치전투에서 패한 것을 더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적들이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 이치(梨峙)의 전투를 첫째로 쳤다”
- <선조수정실록> 26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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