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인물이 되기를 꿈꾸는 모든 자들에게... 자세히보기

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9월 1일: 100년 전,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해양맨 2023. 9. 1. 00:00

역사 속 오늘, 9월 1일에 일어난 사건은:

 

  660년 - 백제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하며 백제 멸망

1923년 - 관동 대지진 발생: 지진 직후의 혼란 속에서 재일 조선인 6천여 명이 군경과 자경단의 죽창 등에 살해됨
1939년 - 나치 독일,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1952년 - 대한민국 국군 징병제 실시
1969년 - 리비아, 무아마르 알 카다피 대위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 무너뜨리고 공화국 수립
1983년 -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사할린섬 근해 상공에서 소련의 요격기에 격추돼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2004년 - 러시아 연방 북오세티야공화국에서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로 최소 385명 사망

 

오늘의 묵상: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1923년 9월 1일, 100년 전 오늘 일본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이 재난 혼란기에 조선인 6천여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리히터 규모 7.9에서 8.3 사이로 추정되는 대지진으로 관동지역, 즉 도쿄, 요코하마, 치바현, 카나가와현, 시즈오카현 등에서 10만 명에서 14만 2천여 명이 사망했고, 3만 7천여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21만여 채의 건물이 파괴되었고 이로 인한 사상자와 실종자는 동일본 대지진의 6배, 고베 대지진의 16배였으며, 피해액은 지진발생 전년도 국민총생산액의 1/3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관동 대학살은 관동 대지진이 있었던 1923년 9월 1일부터 약 3~4주에 걸친 혼란기에 재일 조선인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일부 일본인들이 재난을 틈타 유언비어를 퍼트려 조선인 대학살을 벌인 사건입니다. 재난에 따른 내부의 정치/사회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고대 로마 대화재 당시 네로의 그리스도교 신자 박해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유사점이 있습니다.

 

이 당시 조선인에 의한 방화가 이어져 계엄령이 내려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까지 퍼지면서 죽창, 일본도, 총기 등으로 무장한 자경단을 빙자한 폭도들이 조선인이다 싶으면 가차 없이 죽였습니다. 자경단이란 폭동이나 전쟁 등으로 치안 공백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민병대와 같은 결사단체를 말합니다.

이 당시 학살된 조선인의 수는 독립신문 1923년 12월 5일자에 의하면 6,661명이었고 일본 측 공식 발표는 약 300명 미만이었습니다.

 

1923년 9월 일본 관동 일대에 대지진이 발생, 10만명 이상이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wikipedia

 

대지진으로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군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 유포해 다수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은 몽둥이와 죽창으로 한국인을 학살하고 있는 모습 /조선DB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연합뉴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