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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8월 31일: 61년 전, 장준하 막사이사이 상 수상

해양맨 2023. 8. 31. 00:00

역사 속 오늘, 8월 31일에 일어난 사건은:

 

1056년 - 동로마 제국의 여제 테오도라가 병환으로 후사 없이 사망함으로써 마케도니아 왕조 종말

1957년 - 말레이시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1년 - 소련, 핵실험 재개 선언
1962년 - 트리니다드 토바고,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2년 -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막사이사이상 수상
1968년 - 이란 동북부에 대지진으로 1만 2천여 명 사망
1987년 -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8인 정치회담, 직선제 개헌안 협상 타결.
1989년 - 동아건설, 53억 달러 상당의 리비아 2차 대수로 공사 수주
1991년 - 키르기스스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
1996년 - 8월 31부터 2주간 인도에서 대규모 늑대 습격으로 160명 사망, 250여 명 부상
1997년 - 영국의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
2013년 - 경부선 대구역에서 열차 3중 충돌사고 발생

 

오늘의 묵상: 장준하 막사이사이상 수상

1962년 8월 31일, 61년 전 오늘 장준하가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습니다. 

 

막사이사이상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제적인 상으로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장준하는 세계 언론문학 부분에서 사상계 월간지 등을 통하여 한국의 언론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사상계는 1953년 4월에 창간하여 남북통일, 노동자 문제 등 당시에는 공산주의자로 몰리기 쉬운 논쟁에서부터 시, 소설 등의 문학작품까지 폭넓은 분야의 글을 실어서 지식층으로부터 폭넓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의 부패, 친일, 언론탄압 의혹 등을 비판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렸고, 장준하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주필직을 이양하고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1970년 5월의 205호를 마지막으로 발간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는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등산 중 실족사로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사고 현장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 쟁취,

고루 잘 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평화,

통일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이 맨 손으로 돌을 파 비를 세우니,

비록 말 못 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리라.'

 

사상계 1961년 7월호 표지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박정희 정권 당시 '재야 대통령'으로 불렸던 장준하! 그는 1973년 당시 통일당 최고 고문으로서 유신헌법 '개헌 청원 100만 인 서명운동'에 앞장서다 옥고를 치렀고, 1975년 모종의 거사를 계획 중에 의문사를 당합니다. 이 계획 가운데에는 당시 사적인 인연이 있었던 제2 군단장 김재규도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장준하 의문사 4년 후인 1979년 10월 26일, 유신정권은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 총격사건으로 종말을 맞게 됩니다.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에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발표하는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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