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9월 2일에 일어난 사건은:
기원전 44년 -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가 아들 카이사리온을 공동 통치자로 선언
기원전 31년 -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
1666년 - 5일간의 런던 대화재로 전체 인구 8만 명 중 7만 명이 노숙자가 되고 9명 사망 (1만 3천여 채 가옥 전소)
1919년 - 강우규, 서울역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투척했으나 암살 실패
1945년 - 도쿄만에 정박 중인 미주리 호 함상에서 일본의 공식적인 항복조인식이 거행됨
1991년 - 미국, 발트해 3개 공화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독립 승인
1998년 - 스위스 항공 여객기가 대서양에 추락, 승객 등 229명 사망
2000년 - 비전향 장기수 63명 판문점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송환
2007년 -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 탈레반에 납치됐던 나머지 인질 19명 귀환
오늘의 묵상: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
2007년 9월 2일, 16년 전 오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됐던 한국인 19명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버스로 칸다하르로 향하던 23명(남자 7명, 여자 16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의 배형규 청년부 목사를 포함한 청년부 성도 등 20명과 현지 선교사 3명을 포함한 선교단 23명은 열흘동안 현지 병원과 유치원에서 단기선교와 의료봉사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탈레반은 피랍된 23명 중 배형규 목사 (7월 25일 피살)와 심성민 (7월 30일 피살)을 총으로 살해했으나, 나머지 인질 21명은 8월 31일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풀려나 피랍사태는 발생 42일 만에 종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8월 17일에 건강상태가 안 좋은 2명이 먼저 귀국하고, 9월 2일에는 피랍자 19명이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의해 수감 중인 탈레반 동료의 석방을 요구하는 탈레반의 요구를 아프가니스탄이나 미국은 들어주지 않았고 오로지 한국인 인질들의 생명은 한국 정부의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이미 '테러와의 전쟁'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잃은 미국이나 수만 명의 전사자를 낸 아프가니스탄의 입장에서는 20여 명의 외국 민간인의 생명이 하찮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인질들이 과연 자국 민간인이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무튼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한국정부는 8월 28일에 탈레반에게 소정의 몸값 (378억 원?)을 지불하기로하고 한국인 인질 전원의 석방을 타결하였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로서 미국이 2001년부터 20년간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이들을 물리치지 못합니다. 2021년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탈레반은 정부군을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해외 위험지역에 선교를 다니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비판을 받았으며, 당시 매스컴을 통하여 '아프간 여행자제 요망'이 있었지만, 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한 것은 이 사건 이후인 8월 7일로 정부의 늦장 대응을 비난하는 측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위험을 무시한 선교로 23명이 인질로 잡히고 그중에 2명이 숨지면서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었던 42일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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