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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9월 6일: 78년 전,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여운형)

해양맨 2023. 9. 6. 00:00

역사 속 오늘, 9월 6일에 일어난 사건은:

 

1620년 - 청교도 149명, 메이플라워 호에 승선, 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 시작
1776년 - 허리케인이 과들루프를 강타해 6000명 이상의 사상자 발생
1901년 - 미국의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무정부주의자에 피격당함
1945년 -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 대표자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발표
1950년 - 대한민국 국군, 여군 창설
1965년 - 파키스탄, 인도와 전쟁상태 선포
1970년 -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 유럽 상공에서 뉴욕행 민간 여객기 4대를 납치
1977년 - 코리아게이트: 미국 법무부, 의회 로비 활동과 관련 박동선을 수뢰혐의로 기소
1979년 - 소비에트 연방의 지하 핵실험으로 시베리아에서 강도 7.1의 지진 기록
1981년 - 경상남도 통영 근해서 제1영산호가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 선원 18명 실종
1984년 - 전두환 일본 방문. 히로히토 일본 천황, 과거의 한일관계에 대해 유감 표명
2022년 - 태풍 힌남노가 부산에 상륙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14명 사망)

 

오늘의 묵상: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1945년 9월 6일, 78년 전 오늘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 대표자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 (인공)' 수립을 발표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조선건국위원회 (건준)를 구성한 여운형미국이 진주하기 전에 정부적 구성을 갖춘 '인공'을 수립하여 한반도에 단일 통일정부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부주석을 맡고, 이승만을 주석으로, 김구를 내무부장으로 추대하였으나 그들은 모두 거절합니다. 그래서 '인공'은 좌익 인사들이 주도하게 되었고, '인공'은 미군정에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해체되고 맙니다.

 

독립운동가이며 사회주의자인 여운형은 한반도에 단일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국가가 안정될 때까지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는 것에 찬성하였습니다 (찬탁). 하지만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론을 주장하며 신탁통치를 반대하였습니다 (반탁). 이승만과 손을 잡았던 김구도 남북이 갈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이승만과 갈라서면서, 북한의 김일성을 설득하여 단일정부를 구성하려고 애썼습니다.

 

찬탁과 반탁, 분단과 단일정부의 대립가운데 중도좌파 여운형과 중도우파 김규식이 손을 잡고 1946년 7월부터 '좌우합작 운동'을 펼치며 신탁통치를 받더라도 단일정부를 수립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극우파와 극좌파의 반대로 실패하게 됩니다. 

 

당시 여론은 이제 겨우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었는데 또다시 타국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두 개의 단독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신탁통치를 받는 것은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결국 미군정하에 3년을 보내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단독정부가 수립되었으니, 이는 3년간 신탁통치를 받고 나라가 분단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운형은 평생 양쪽 극우파와 극좌파의 암살과 테러에 시달리다가 결국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승용차 안에서 총에 맞아 절명합니다. 그의 영결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60여만 명의 추모인파가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 (2005년)과 대한민국장 (2008년)을 수여했습니다. 

 

왼쪽부터 몽양 여운형,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1947년 8월 3일, 여운형 장례식 (향년 6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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