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마종기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며루치는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 떼거리로
잡혀 생으로 말려서 온몸이 여위고
비틀어진 며루치 떼의 비명을 들으면.)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치 떼를 생각하자.
드디어 그 긴 겨울도 지나고 있다.)
멸치 (Anchovy)를 며루치, 메루치, 메루꾸, 이루꾸 등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국물만 내고 버려지는 며루치에게서, 시인 마종기는 온몸을 던져 시대의 아픔을 겪은 후 이제는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역사 속, 그리고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의 슬픈 얼굴을 봅니다. 거기에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도 있으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 간 믿음의 조상도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이름을 못 남기면 실패한 삶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다 이름을 남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주위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주고 소금이 되는 삶을 살 수는 있습니다. 멸치가 죽은 몸을 또 우려내어 시원한 국물맛을 내듯이, 우리가 비록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악의 어두움을 물리치는 빛이 되고,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된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삶가운데 우러난 빛과 소금을 통하여 아름답게 된 이 세상을 보고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기억해 줄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 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마 5:13~16 >>
마종기(1939년 1월 17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 소설가로서 14권의 시집과 3권의 산문집을 냈으며 2011년에는 박두진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영상의학과 의사로서 미국 오하이오 주립의대 교수, 오하이오 톨레도 아동병원 초대 부원장 등을 역임하고, 연세대 국문과 초빙교수, 서울가톨릭대학교 국문과 초빙교수 등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마해송이며, 어머니는 한국최초 여성 서양무용가이자 이화여대 무용과를 창설한 무용가 박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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