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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9월 27일: 31년 전, 노태우 대통령 중국 방문

해양맨 2023. 9. 27. 00:00

역사 속 오늘, 9월 27일에 일어난 일:

1066년 - 정복자 윌리엄이 잉글랜드 정복을 시작했다
1484년 - 창경궁 준공
1939년 -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나치 독일에 항복.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 군사동맹 조인
1940년 - 제2차 세계 대전: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세 추축국이 베를린에서 삼국 동맹 조약 체결
1952년 - 한국 전쟁: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한국 전(全) 해안 봉쇄 발표
1985년 - 대한민국이 개발에 참여한 첫 해외 유전인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 생산개시

1992년 - 노태우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방문
2014년 - 일본 나가노현 온타케 산에서 화산 폭발로 63명 사망
2016년 - 철도노조가 정부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해 12월 9일까지 최장 74일 동안 파업
2020년 -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전쟁 시작


오늘의 묵상: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방문

1992년 9월 27일, 31년 전 오늘 노태우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같은 해 8월 24일 한중수교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국빈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에서 남북한 관계 개선과 사회주의권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바 있으며, 한중수교와 중국방문은 '북방외교'의 한 연장선입니다.

당시 국제적 상황은 1989년 12월 미소 몰타정상회의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했고, 1989년 5월 고르바초프의 중국 방문으로 중소관계가 정상화되었으며, 1990년 9월 한소수교가 수립된 것 등이 한중수교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노태우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 유엔과 모스크바를 거쳐서 그 마지막 관문인 북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로서 북한이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는 두 나라 모두와 우리는 새로운 친구가 된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남북한의 자유왕래를 막고 있는 저 휴전선뿐입니다.
저는 북한의 오랜 친구이자 우리의 새로운 친구인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통일을 향한 우리 측의 입장을 분명히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가 모든 이들로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육사 졸업식에서 육사 교장은 졸업 축사에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육사 교장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지만 사임했습니다.

 

1992년 9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사상 첫 한중정상회담을 보도한 KBS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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