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9월 25일에 일어난 사건은:
1066년 - 스탬퍼드브리지 전투에서 영국의 해럴드 2세가 노르웨이의 하랄 3세를 격파
1396년 -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유럽 십자군을 격파
1920년 - 일제 강점기: 일본, 사설이 일본 황실의 상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동아일보에 1차 정간조치
1998년 - 신 한일 어업협정 타결
오늘의 묵상: 신 한일 어업협정 (독도밀약의 계승)
1998년 9월 25일, 25년 전 오늘 신 한일 어업협정이 체결됐습니다.
한일 어업협정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으로 1965년과 1998년 두 차례 체결되었습니다. 1965년 6월에 체결된 어업협정을 제1차 혹은 구 한일 어업협정, 1998년 9월 25일에 체결한 협정을 제2차 혹은 신 한일 어업협정이라고 합니다.
1945년 이후 대한민국과 일본의 어민들은 어로 구역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1952년 이승만은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을 통해 평화선으로 불린 대한민국의 어로 구획을 발표하였으며 이를 위반하는 일본 어선을 나포하였습니다.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도 한국방위수역을 설정하고 양국의 선박 통행 구역을 정하였는데 클라크 라인이라 불리게 된 한국방위수역은 이승만의 평화선과 유사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일 양국의 수역 갈등은 잦아들었으나 갈등의 원인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1965년 어업협정은 제3공화국 때 한일국교 정상화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으로 박정희는 대선 승리를 위해 서둘러 어업협정을 체결하였으나 공개시기를 늦추었습니다. 제1차 한일 어업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기존의 평화선은 무력화되었으며 특히 독도 인근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여 이후 독도를 둘러싼 여러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일본은 차관 등 청구권 문제의 대가로 평화선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굴욕외교' 혹은 '독도밀약'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1차 한일 어업협정 이후에도 어로 구획은 지속적으로 한일 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어왔고 1998년 1월 23일, 일본은 기존의 한일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998년 9월 25일, 현재의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 한일 어업협정에서도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우리 영해의 기선으로 삼아 여전히 독도 영유권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협정의 유호기간은 3년으로 양쪽에서 이의가 없으면 자동으로 연장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는 아무 때나 파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이제 언제라도 협정을 파기하고 다시 재협상을 추진할 수 있지만 EEZ에 대한 양국 의견차를 좁히기 어려워 실익이 크지 않다며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국가 세금으로 어민지원 예산을 확충하려는 것보다 하루속히 재협상을 추진하여 우리의 바다를 되찾는 것이 어업 종사자들이나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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