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9월 23일에 일어난 사건은:
1592년 - 임진왜란: 제2차 금산 전투 발발
1803년 - 2차 영국-마라타 전쟁: 마라타제국 부대가 아싸예 전투에서 영국에게 패배하다
1903년 - 안창호,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치단체 친목회 조직
1932년 - 네지드와 헤자즈 왕국이 합쳐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되다
1940년 - 제2차 세계 대전: 일본군, 인도차이나 반도 침공 개시
1973년 - 후안 페론이 군사쿠데타로 실각한 지 18년 만에 다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되다
1992년 -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외교 관계 단절 후 대사관 완전 철수
오늘의 묵상: 금산 칠백의총(七百義塚)
1592년 9월 23일, 431년 전 오늘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의병 1500명이 죽었습니다.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충청도 금산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조선의 700 의병과 영규대사의 800 승병이 전멸했습니다.
이미 제1차 금산전투에서 의병장 고경명과 아들 고인후를 포함한 의병 7,000명이 전멸하였지만, 의병장 조헌은 금산을 탈환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관군의 협조 없이 승병의 도움만으로 무리하게 전쟁을 치르다가 1만 명의 왜군에게 포위당하여 아들 조극관과 영규대사 등과 함께 모두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한편, 이 싸움에서 왜군도 죽은 자가 많아 3일간 시체를 태우고 퇴각함으로써 호남·호서 지방이 안전하게 되었으며 나라를 회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왜군이 물러간 뒤 조헌의 제자인 박정량(朴廷亮)과 전승업 등이 시체를 수습하여 유골을 모아 큰 무덤 한 곳에 합장하고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이라고 표시하였는데, 후세에 이를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홀대했던 조선시대에 지어진 이름을 현재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2차 금산 전투의 조선군은 1,500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1500 의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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