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9월 21일에 일어난 사건은:
454년 - 서로마 제국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아이티우스를 죽이다
1792년 - 프랑스혁명: 프랑스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 선포
1839년 - 기해박해로 피에르 모방, 자크 샤스탕 신부와 로랑마리조제프 앵베르 주교가 새남터에서 순교
1898년 - 청나라의 서태후가 광서제를 유폐하고 섭정을 실시하면서 무술변법이 좌절되다
1947년 - 반공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 결성 (단장 지청천)
1953년 - 북한 공군 노금석 대위, 미그 15를 몰고 대한민국으로 귀순
1964년 - 몰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5년 - 베트남 전쟁: 대한민국 최초의 월남파견 전투부대인 청룡부대 결단식 포항서 열림
1999년 - 중화민국에서 9.21 타이완 대지진으로 2천여 명 사망
2001년 - 대우자동차 미국 GM사에 매각
2003년 - 갈릴레오 호가 목성에 충돌하며 임무를 마침
오늘의 묵상: 기해박해 (천주교 탄압)
1839년 9월 21일, 184년 전 오늘 기해박해로 프랑스 주교와 신부등 3명이 효수되었습니다.
1839년(헌종 5년) 3월부터 시작된 기해박해는 같은 해 10월까지 지속되었는데, 9월 21일 프랑스에서 선교사로 왔던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효수(梟首)되었습니다. 기해박해 기간에 54명이 순교했고, 장살(杖殺)되거나 병사(病死)한 사람이 60여 명이라고 합니다.
천주교는 17세기 초반 중국으로 간 조선 사신들에 의해 처음 조선 땅에 알려졌으며 18세기 후반 정조(正祖)는 천주교를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혹세무민의 사학(邪學)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유교의 제사의식이나 신분질서를 부정하며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여기에는 당시 로마 교황청이 제사불허와 허용을 수차례 번복하는 혼선과 함께 불효불충(不孝不忠)하여 무부무군(無父無君)한 사교(邪敎)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 탄압과 박해의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70년간의 조선 천주교인들의 수난은 고대 로마제국 교인들의 수난보다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정도로 조선시대의 천주교 탄압은 그 상처가 너무나 큽니다. 당시 천주교 박해는 정적제거의 도구로도 쓰이면서 조선의 근대화를 퇴보시켰고, 세도정치와 쇄국정책으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일제강점기라는 한국 현대사의 치욕을 당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됩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많은 천주교 박해가 있었지만 크게 5가지만 추려본다면:
1. 신해박해 (1791년, 정조 15년)
2. 신유박해 (1801년, 순조 원년)
3. 기해박해 (1839년, 헌종 5년)
4. 병오박해 (1846년, 헌종 12년):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 순교
5. 병인박해 (1866년, 고종 3년): 흥선 대원군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8천여 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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