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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0월 7일: 44년 전,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해양맨 2023. 10. 7. 00:00

역사 속 오늘, 10월 7일에 일어난 일:

1769년 -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에 도착
1910년 - 일제강점기: 일본, ‘조선귀족령’ 제정에 따라 이완용 등 75명에게 작위 수여
1949년 - 동독이 동베를린을 수도로 정하다, 동독 건국일
1950년 - 유엔 총회,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과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설치 결의
1950년 - 중국 인민해방군, 티베트 진주
1979년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파리서 의문의 실종 (추후 암살로 판명)
2001년 - 테러와의 전쟁: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향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시작되다


오늘의 묵상: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1979년 10월 7일, 44년 전 오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납치 암살당했습니다.

 

2007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김형욱은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납치되어 암살되었다고 합니다.

김형욱은 육사 8기로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한 후 중앙정보부 부장이 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의 실세가 되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권세는 3선 개헌의 진통 속에 '3선 개헌의 선제조건'에 '김형욱과 이후락의 해임'이 포함되어 경질되면서 6년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이후락은 주일대사를 거쳐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복귀했으나 김형욱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김형욱은 1972년 유신 출범후 완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배제되었고, 미국망명 후 1977년 미국 연방 하원의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하여 정권의 비리를 거침없이 폭로하면서 박정희와의 사이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79년 10월 1일, 미국에 있던 김형욱은 당시 중앙정보부 간부로부터 프랑스 파리로 가라는 통보를 받고 10월 4일, 파리로 갑니다. 1979년 10월 7일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공작원으로 보낸 중앙정보부 연수생 1명과 외국인 2명이 합세하여 납치 후 암살하였습니다.

 

아직까지 김형욱의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박정희와 김재규는 김형욱의 사망 이후 약 20여 일 뒤 10.26 사건으로 모두 사망하게 됩니다.

 

197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증언을 할 때의 김형욱.

 

김형욱과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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