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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0월 10일: 조선의용대 창설 (김원봉)

해양맨 2023. 10. 10. 00:00

역사 속 오늘, 10월 10일에 일어난 일:

1911년 - 청나라에서 우창 봉기가 일어났다. 이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막을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된다
1932년 - 일제강점기: 히로히토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가 일본 이치가와 형무소에서 처형되다
1938년 - 김원봉, 중국 한커우(우한)에서 조선의용대 창설
1945년 - 김일성, 조선 공산당 북조선 분국 설치. 이후 북조선노동당으로 개편한 뒤 49년 6월 남조선노동당을 흡수해 조선노동당으로 확대
1973년 - 대한민국 해병대, 대한민국 해군에 통합.
1980년 - 알제리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2만여 명 사망
1993년 - 전북 부안군 앞바다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로 292명 사망
2003년 -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직에 대한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
2007년 - 대한민국 정부,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이하여 사형폐지 국가 선포식을 하다
2015년 - 튀르키예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80여 명 사망
2015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오늘의 묵상: 조선의용대 창설

1938년 10월 10일, 85년 전 오늘 중국 한커우(우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조선의용대(Korean Volunteers Army) 또는 조선항일 의용군은 대장 김원봉과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로 중국 후베이성 한커우 (현 우한)에서 결성된 중국 관내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독립군 무장단체였습니다.

 

장제스(장개석)의 후원으로 중국 국민당 정부군의 지원부대로 창설되어 중국 본토에서 일본군과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1941년 의용대 일부가 화북으로 이동하자 김원봉의 라이벌이었던 최창익중국 공산당의 지원으로 화북지역의 의용대 통제권을 장악하고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개칭합니다. 그 후 1949년 조선의용군은 중국인민해방군 소속으로 

북한에 보내지고 인민군에 편입되어 북한군 전력이 보강됩니다.

 

의용대의 전체 통제권을 상실한 김원봉과 의용대 일부는 1942년 충칭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렇게 항일 의용군으로 시작한 동료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속된 지역에 따라서,  누구는 북한 인민군이 되었고, 누구는 한국광복군이 되었습니다. 

 

조선의용대 성립기념 사진.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 대장 김원봉(앞줄 가운데).

 

김원봉은 의열단 단장 외에도 조선의용대 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을 거치며 독립운동에 힘쓴 인물입니다.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다 해방 후에 귀국하여, 1948년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한 뒤에 그대로 북한에 남았습니다. 그 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초대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냈지만 1958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원봉을 등장 또는 모티브로 한 영화 <암살>과 <밀정>을 계기로 그가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제 경찰이 백범 김구 선생보다 더 높은 현상금을 내걸 정도로

항일 투쟁의 치열함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분.

(중략)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략)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

 

-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페이스북 글 가운데 (2015년 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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