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0월 19일에 일어난 일:
1948년 - 제주 4·3 사건 진압을 거부한 국군 14 연대가 봉기하다(여수·순천 사건).
1961년 -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절 조직폭력배이며 정치 깡패 이정재 사망.
1987년 - 미국의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가 국채 신용도가 떨어지며 22.6%나 하락(검은 월요일).
1991년 -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으로 2명 사망, 21명 부상. 운전자 사형.
오늘의 묵상: 경찰에서 정치 깡패가 된 이정재
1961년 10월 19일, 62년 전 오늘 정치 깡패 이정재가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정재는 이승만 정부 시절 경찰 출신 조직폭력배로서 거물 정치 깡패입니다. 이정재는 이천의 씨름장사로 이름을 떨쳤고, 김두한의 추천으로 특채로 경찰이 되었으며, 1947년 제주 4.3 사건에도 참여하였습니다. 1949년 반민특위 해체 이후 경찰을 사직하고,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하다가, 1953년에는 임화수 등의 도움으로 동대문 상인연합회를 세우고 회장에 오르게 됩니다.
이정재는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면서 교묘한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면서 동대문 사단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고향후배이며 의형제인 곽영주 경무대 경찰서장 (현 대통령 경호실장)의 도움이 큽니다. 당시 곽영주가 이정재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소개했고 이정재는 이승만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곽영주는 이정재 조직의 튼튼한 뒷배가 되고, 이정재 조직은 야당 인사 및 자유당 정권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일에 공조하게 됩니다.
특히, 1957년 5월 25일 '장충단 민주당 시국 강연회 방해사건'에서는 이정재가 이끄는 1000여 명의 폭력배들의 각목 테러가 있었고,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고려대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것도 이정재 조직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정재는 정치 폭력 조직을 운영하다가 직접 정계에 진출하려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 민의원으로 출마하려고 공을 들이던 중, 마지막 순간에 이천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이기붕에게 그 지역구를 반강제적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때 이기붕과의 마찰로 이기붕의 미움을 사게 되며 이정재의 권력도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그 후, 이승만 하야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이정재는 조직폭력배 척결 사업 대상에 걸려 혁명재판에 넘겨지게 됩니다. 그는 결국 1961년 5월 21일 시라소니 린치 사건, 단성사 저격 사건, 고대생 습격 사건 등으로 기소되어 사형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62년 전 오늘, 그는 서울형무소에서 44세의 나이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부 부통령'이라고 불리던 곽영주도 4.19 혁명 당시 경무대 앞 발포 명령, 장충단 집회 방해 사건 은폐 등 권력남용의 죄로 그 해 12월 21일 같은 곳에서 교수형을 당하는데, 그의 나이 37세였습니다.
이승만 정부 당시 공산주의와의 투쟁이라는 명목하에 개인 폭력집단과 국가 공권력의 연합을 묵인하고 비호한 것이 이정재와 곽영주의 커넥션을 낳았고, 이렇게 대한민국에 '야인시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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