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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월 11일: 1492년 전, 콘스탄티노폴리스 전차경주 후 폭동

해양맨 2024. 1. 11. 00:00

역사 속 오늘, 1월 11일에 일어난 일:

  532년 - 콘스탄티노폴리스 원형경기장 전차경주 후 폭동 발발: 니카반란의 시초.
1683년 -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에트나 화산 폭발. 6만여 명 사망.

1851년 - 홍수전이 금전촌에서 난을 일으키다. 중국 태평천국의 난의 시작.

1983년 - 나카소네 총리가 일본의 현직 총리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다.
1985년 - 양강교 버스 추락 사고로 39명의 사상자 발생되었다.

2023년 -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 2215억 원 횡령 피의자 1심 징역 35년 선고.

 

오늘의 묵상: 니카반란

532년 1월 11일, 1492년 전 오늘,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전차경주가 끝난 후 청색당과 녹색당이 서로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황제는 즉각 군대를 투입해 무력으로 질서를 회복했는데 이것이 약 일주일에 걸쳐 일어난 니카 반란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 반란으로 성 소피아 성당을 비롯한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었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진압으로 3만여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보통 전차경주는 4개의 팀(적색, 청색, 녹색, 백색)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로마 제국에서 비잔티움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2개로 줄어 녹색당과 청색당만 남게 되었습니다. 청색당은 주로 황제를 비롯하여 대지주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고, 녹색당은 상인, 기술자 등 중간 계층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원형경기장에서 펼치는 전차경주의 재현.

 

532년 오늘, 전차 경기가 끝난 후 두 당파 간에 충돌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청색당과 녹색당의 지도자를 처형하고 감금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양 세력이 서로 힘을 합쳐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민심수습 차원으로 사흘 뒤 전차경주를 재개했으나 성난 군중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 황제를 향해 "승리"를 의미하는 "니카"를 외쳤습니다.

 

532년 1월 니카반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황제는 황급히 피신하고 경주를 중단시켰지만, 성난 군중은 경기장을 뛰쳐나와 폭동을 일으켰고 감옥을 부수고 관리들의 집에 무차별 방화를 하였습니다. 황제의 정책에 반대한 일부 원로원 의원들도 황제를 타도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폭도들과 결탁했습니다. 이때 발생한 화재로 원로원 의사당, 성 소피아 성당까지 불에 타버렸습니다. 

 

1월 18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베리살리우스문다스 장군들에게 명하여 폭도들을 경기장 안으로 몰아넣은 다음 약 3만여 명을 학살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반란을 지원한 원로원 의원들을 국외로 추방시켰습니다. 일주일 간에 걸친 니카반란으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반 이상은 소실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참고]

당시 성 소피아 성당의 현재 명칭은 '아야 소피아(Aya Sofya)'로서 원래 이름은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였습니다. 그리스어로 'Hagia(성스럽다) Sophia(지혜)'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으로 1453년 비잔틴 제국을 오스만 튀르크가 점령하자 '성스럽다'의 아랍어인 'Aya'로 바뀌어 '아야 소피아'가 되었습니다.


아야 소피아는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 때 세워졌고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416년 재건되었고, 532년 '니카 반란'때 다시 화재를 당하여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기술자 100명과 연인원 1만 명을 동원해 5년 10개월 만인 537년 다시 완공하였습니다.


그 후 오스만제국으로 넘어가면서 한때 헐릴 위기까지 쳐했으나, 성당의 아름다움에 빠진 술탄 메호메트 2세에 의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당으로의 모습은 많이 지워지고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다가 현재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구 콘스탄티노폴리스)을 상징하는 건물로 성당이나 이슬람사원이 아닌 박물관으로 개조되었습니다. 

 

2020년 7월 10일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아야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지정한 1934년 내각회의 결정을 취소한다. 아야소피아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개인 재산이었으며,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술탄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단 소유물로, 모스크 이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이야 소피아'는 성당→모스크→박물관에서, 86년 만에, 다시 모스크가 되는 기구한 운명이 되었습니다.

아야 소피아(Aya Sof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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