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월 9일에 일어난 일:
1885년 - 갑신정변 처리를 위한 한성조약이 체결되다.
1905년 - 러시아 피의 일요일.
1953년 - 창경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1968년 -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OAPEC)가 설립되었다.
2011년 - 이란 항공 277편 보잉 727 여객기 추락사고로 77명 사망.
2021년 - 인도네시아 스리위자야 항공 182편 추락 사고로 62명 사망.
오늘의 묵상: 러시아 피의 일요일
1905년 1월 9일 (당시까지 러시아에서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으로. 현재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는 1월 22일), 119년 전 오늘,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으로 가는 노동자들의 평화적인 청원 행진을 정부 근위군이 발포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건입니다.
불평등한 사회체제로 억눌린 러시아 민중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손에 들고 비폭력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실권자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무력진압으로 사망자만 500∼600명, 부상자 수천 명을 내는 유혈사태를 초래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삶에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은 황제에게 자신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보이면서 행진하며 러시아 제국의 국가를 부르거나 차르와 왕조의 번영을 기원하는 기도나 노래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대다수 참가자가 교회에 갈 때처럼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왔고, 어린아이를 포함한 일가족이 다 함께 나온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날 황제 일가는 시외에 있는 별궁으로 휴가를 떠나 황궁을 비우고 있었고, 차르가 황궁에 없다고 발표하면 행진이 취소되리라는 안일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황궁을 비롯한 주요 거점에는 근위연대를 비롯해 급히 배치된 1만에 달하는 군대를 배치했습니다.
시위대와 진압군이 대치하다가 시위대가 물러가지 않자 군대가 일제사격을 가하고 기병들이 채찍과 군도를 휘두르며 시위대에 돌진하면서 거룩한 주일은 피의 일요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무장 상태로 황제를 찬양하며 평화롭게 행진하고 청원하던 군중들을 어떠한 교섭도 없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습니다.
피의 일요일의 학살은 ‘제1차 러시아 혁명(1905년 1월 22일 – 1907년 7월 16일)’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는 곧 1917년 2월과 12월에 일어난 '제2차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져 결국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련정권이 수립되게 됩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 〈1905년〉은 피의 일요일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1악장-궁전 앞 광장, 2악장-1월 9일, 3악장-추모, 4악장-경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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