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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월 18일: 119년 전, 일제의 화폐정리 사업

해양맨 2024. 1. 18. 00:00

역사 속 오늘, 1월 18일에 일어난 일:

1535년 -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를 발견하다.
1825년 -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차 로코모션 호 운전.
1871년 - 독일 제국의 성립.

1905년 - 일제의 조선 화폐정리사업 시작.
1912년 - 탐험가 로버트 스콧, 남극에 도달.

오늘의 묵상: 일제의 조선 화폐정리 사업 

1905년 1월 18일, 119년 전 오늘, 「화폐조례 실시에 관한 건」이 발표되면서 일제에 의한 조선의 화폐정리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한일 간의 통상무역은 급격히 진전되었고 무역결제수단으로 일본화폐가 사용되어 일본화폐의 한국 진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전근대적 화폐제도는 많은 불편과 손실을 초래했고 일본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국에 근대화폐가 통용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화폐제 도입은 번번이 무산되었다가 결국 1904년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화폐정리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1904년 8월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되고 일본인 메가타가 조선의 재정고문으로 임명된 후, 조선의 백동화와 엽전(상평통보)을 일본 화폐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조선 화폐제도 문란의 가장 큰 문제가 백동화의 남발에 있다고 보고 1904년 조폐창 역할을 하던 전환국을 폐지합니다. 

 

2전 5푼짜리 백동화.

 

백동화는 품질(무게와 형상)에 따라 갑·을·병으로 구분하였는데, 이 가운데 갑종은 본래 값인 2전 5푼, 을종은 1전으로 교환해 주고, 병종은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화폐 교환 과정에서 조선인들의 백동화는 을이나 병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많은 조선인들이 교환을 거부하여 가지고 있던 화폐가 무효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백동화 무효에 관한 고시.

 

일본인들은 화폐 정리 사업을 미리 알고 있어 사업이 시행되기 전에 악화를 미리 양화로 바꾼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태가 좋지 않은 백동화는 쓸모없음을 미리 안 일본 자본가들은 을/병종 백동화로 농경지나 집 등을 마구 사들였습니다. 또한 을이나 병으로 판정되어 교환이 거부된 조선인들의 백동화를 일본인들이 헐값에 사 갑으로 교환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훗날 상태가 안 좋은 백동화가 고철이 된 것을 알게 된 많은 조선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백동화 정리 사업으로 인해 1905년 이후 한국 사회는 금융 공황에 직면하였고, 상인들의 도산도 속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부동산을 매집하는 등 점차 조선의 경제를 지배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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