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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월 20일: 13년 전, 조봉암 간첩 혐의 무죄 판정

해양맨 2024. 1. 20. 00:00

역사 속 오늘, 1월 20일에 일어난 일:

1953년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2011년 - 대한민국 대법원이 조봉암 간첩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2017년 -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2021년 - 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오늘의 묵상: 조봉암 간첩 혐의, 사후 무죄 판정

2011년 1월 20일, 13년 전 오늘, 죽산 조봉암이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지 52년 후 재심에서 무죄 판정을 받았습니다. 

 

조봉암은 일제강점기에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 대학을 2년 수료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 조직중앙위원장을 지냈으며 고려공산청년회의 간부가 되었습니다. 이후 소련, 중국, 만주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며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1932년 9월 상하이 프랑스 불조계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 국내로 송환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복역하였습니다.

 

출옥 후 인천에서 지하 노동단체를 조직, 비밀리에 활동하다가 1945년 1월 다시 검거되었으나 해방과 동시에 석방되어 조선공산당, 건국준비위원회 인천부지부, 민족주의 민주전선 인천부지부 등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1946년 5월 박헌영과의 갈등을 계기로 사상전향하여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하였고 남북협상 노선을 걷다가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1948년 7월 국회 헌법기초위원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대한민국 제1대 농림부장관과 제2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이후 제2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30%라는 지지율을 얻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58년 상인 양명산을 통해 북한의 정치자금을 건네받았다는 허위 날조 혐의로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재심결과 사형선고를 받고, 1959년 7월 31일 60세의 나이에 교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의 사형집행은 이승만 정권의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11년 오늘,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내려 복권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제1대 농림부 장관 당시의 죽산 조봉암.

 

진보당 사건으로 재판받는 조봉암.

 

원래 공산당에서 출발했지만 광복 후 박헌영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공산당과 결별한 죽산 조봉암은 당시 북쪽에서조차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조봉암의 사후, 북한에서는 애국렬사릉에 그의 가묘를 설치하였고,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조국통일상이 추서되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표창 서훈에 추천되었으나 진보당 사건과 북한의 애국렬사릉 가묘의 여파로 번번이 무산되었습니다.

 

북한과 남한에서 다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인 조봉암! 제헌의회 의원, 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장관이자 대통령후보였던 그는 간첩혐의로 사형되어 현재 망우리에 묻혀있습니다.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 묘지에 있는 조봉암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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