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월 21일에 일어난 일:
1535년 - 가톨릭 교회의 미사를 비난하는 플래카드 사건으로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프랑스의 개신교도 6명이 화형을 당하다.
1793년 -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다.
1919년 -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영국에 대해 아일랜드 독립 전쟁을 시작하다.
1968년 - 북한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습격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2011년 - 대한민국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었던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이 대한민국 해군에 의해 구출되었다.
오늘의 묵상: 1.21 무장 공비 사태
1968년 1월 21일, 56년 전 오늘, 북한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습격하려 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1·21 사태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북한 124부대 소속 무장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대통령 박정희를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입니다.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1월 17일 밤 휴전선을 넘은 무장공비들은 21일 밤 9시 30분경에 청와대 앞 500미터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창의문 근처에서 경찰의 불시검문에 불응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무장공비들이 도주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잡기 위해 군경합동 소탕작전을 벌인 결과, 31명 중 29명이 사살되었고 1명은 북으로 도주하였으며 1명이 생포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민간인을 포함해 30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로 향토예비군, 육군 3 사관학교, 전투경찰대, 684부대가 창설되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교련 교육이 실시되었으며 대통령 경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 앞길까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 또한 일시적으로 육해공군의 복무기간이 최대 6개월 이상 연장되는 바람에 당시 제대를 앞둔 말년병들의 분통을 사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사건 관련성을 전면 부인하였으나 생포된 김신조는 방송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라고 말해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복수를 위해 특수부대인 684부대를 창설하였으나 계획이 취소되며 무관심 속에 부대원들을 방치하였는데, 그 결과 1971년에 '실미도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북한은 청와대 기습작전이 실패했으나 대남공작을 단념하지는 않았습니다. 1월 23일에는 미군의 정보함 푸에블로 호를 원산 앞바다에서 납치했고, 그해 10월 30일부터 11월 2일에 걸쳐 걸쳐 울진, 삼척 지역에 120명의 무장공비를 침투시켰습니다.
김일성은 1972년 5월 4일,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과 가진 비밀회담에서 1·21 사태는 자신이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고 내부의 좌경 맹동분자들이 한 짓이라 하며 시인한 후 사과 하였습니다. 유일하게 도주하여 북으로 돌아간 이는 조선인민군 대장인 박재경으로, 총 정치국 부총국장을 역임하고 2000년에 청와대를 방문하여 김대중에게 송이버섯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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