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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월 31일: 212년 전, 홍경래의 난 발발-민란의 선구자

해양맨 2024. 1. 31. 00:00

역사 속 오늘, 1월 31일에 일어난 일:

1747년 - 런던의 록병원에서 세계 최초로 성병진료가 시작되다.
1812년 - 조선 평안도 가산군에서 홍경래의 난 발발.
1952년 - 일본, 경찰예비대를 자위대로 개편. 일본 재무장 시작.
1969년 - 천안 열차 추돌 사고로 승객 41명 사망 131명 부상당하다.
2009년 - 케냐에서 시민들이 유조차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주워 담던 중 화재가 발생, 최소 111명 사망, 수백 명 화상.
2020년 -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하였다.

오늘의 묵상: 홍경래의 난

1812년 1월 31일, 212년 전 오늘, 조선의 몰락 양반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인 역량이 성장함에 따라 여러 사회모순에 대한 저항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갔습니다. 교육 기회가 늘어남에 따라 지식인이 양산되고,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종래의 관직 체제와 인재 등용 방식으로는 더 이상 그들을 포용할 수 없어 불만 세력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특히 평안도는 활발한 상업 활동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 발전과 역동적인 사회상을 보이고 있었으나, 중앙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지역민에 대한 차별대우가 심했습니다.

 

당시 과거 제도는 크게 부패하여 권문세가의 자제는 급제의 영예를 차지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쉽게 성공할 수 없으며, 특히 평안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홍경래우군칙 등을 중심으로 서북지방의 농민, 몰락 양반, 상인, 광산업자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정주성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5개월간의 반란은 실패했고 홍경래는 총에 맞아 죽고, 정주성을 탈환한 조선 관군은 투항한 3천여 명 중 열한 살 이상의 남자 2천여 명을 처형했습니다. 홍경래의 난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조선 사회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어 농민들의 저항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며 그 뒤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농민 반란의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홍경래가 난을 일으켜 점령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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