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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2월 4일: 79년 전, 얄타회담 개최: 남북 분단의 단초 제공

해양맨 2024. 2. 4. 00:00

역사 속 오늘, 2월 4일에 일어난 일:

1789년 -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선출됨.
1945년 -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이 독일 처리 문제를 위한 얄타 회담을 개최.
2006년 - 필리핀 마닐라의 한 경기장에서 압사사고가 발생, 88명이 숨지고 280여 명이 다쳤다.

2006년 - 서울에서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연구재개"를 요구하며 정해준이 분신자살을 했다.
2008년 - 미국에서 토네이도가 발생, 52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다쳤다.
2014년 - 스코틀랜드 의회가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안을 통과시키다.

 

오늘의 묵상: 얄궂은 얄타회담

1945년 2월 4일, 79년 전 오늘,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이 독일 처리 문제를 위한 얄타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얄타 회담은 1945년 2월 4일부터 2월 11일까지 소련 흑해 연안에 있는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미국·영국·소련의 수뇌자들이 모여 나치 독일의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과 그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회담입니다. 당시 대영제국은 저물어가는 시대였으므로 미국과 소련 양측의 회담으로, 이 회담 이후로 미-소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당시 일본 제국과 서로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에게 대일 전 참전을 약속받았고 이로 인해 일제 패망 후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점령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당시 스탈린은 일본과의 전쟁 참여를 대가로 1905년에 러일전쟁에서 상실했던 영토인 남사할린 등을 요구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원폭이 개발되기 전이라 소련의 협력이 절실했던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은 소련의 참전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고, 소련은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공격하며 한반도로 진격해 들어왔습니다. 연합군에게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독립을 맞이했으나, 한반도에 미-소 양국이 주둔하며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할되어 양국의 신탁통치를 받게 됩니다. 조국 분단의 단초를 제공한 얄타회담은 우리나라에게는 얄궂은 회담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의 수장(Big Three)인 영국의 윈스턴 처칠,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참석한 얄타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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