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2월 7일에 일어난 일:
1948년 - 미군정: 2·7 사건이 발생했다.
1951년 - 6.25 전쟁 중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으로 민간인 700여 명 사망.
2012년 - 필리핀에서 진도 6.8의 강진이 발생하여 43명 사망.
2014년 - 영국 노퍽주의 해안가에서 80만 년 전 인간의 발자국 50여 개가 발견되었다.
오늘의 묵상: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
1951년 2월 7일, 73년 전 오늘, 6.25 전쟁 중 공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국군에 의하여 산청·함양 지역의 민간인 700여 명이 대량학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6.25 전쟁 당시인 1951년 2월에 한국군 11사단(화랑사단)이 거창군 신원면 일대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보도연맹 학살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육군에 길이 남을 수치이자 흑역사입니다. 산청과 함양에서 시작되어 거창에서 끝난 사건이므로, 산청·함양·거창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 퇴로가 막힌 다수의 인민군 부대들이 좌익들과 함께 입산하여 빨치산 운동을 전개하자, 국군은 광복군 출신 최덕신 소장을 사단장으로 하는 11사단을 빨치산 토벌에 전담시켰습니다. 독립영웅 최덕신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자신의 성은 견고하게 지키되 포기해야 할 곳은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정리하여 적이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없애 버린다"라는 견벽청야(堅壁淸野) 전술을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시대의 병법을 현대전에서 구체화시키는 순간 무참한 학살극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최덕신 소장이 이끄는 11사단은 1950년-1951년 동계 작전 중 11월 남원군에서 벌인 학살극을 시작으로, 12월 함평군, 1월 광산군을 거쳐, 2월에는 거창군에 도달하게 됩니다.
거창군 신원면 인근에 빨치산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11사단 9 연대는 당시 연대장이었던 오익경 중령이 연대 휘하 3대대에게 작전명령을 하달합니다.
"작전지역 안의 인원은 전원 총살하라.
공비(빨치산)들의 근거지가 되는 건물은 전부 소각하라.
적의 보급품이 될 수 있는 식량과 기타 물자는 안전 지역으로 후송하거나 불가능한 경우에는 소각하라."
이 명령서를 접수한 3대대는 1951년 2월 11일까지 산청군, 함양군, 거창군 인근 지대의 주민 719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이 중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61세 이상의 노인도 74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견벽청야라는 개념을 제시한 사단장 최덕신은 결단코 그런 뜻으로 견벽청야를 시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최덕신에게는 책임을 묻지 못하고 직위 해제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연대장 오익경 대령과 대대장 한동석 소령에게는 살인죄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습니다. 하지만 1년 후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특별 사면으로 석방했고, 한동석은 5.16 이후 박정희에게 발탁되어 강릉시 제5대 시장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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