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2월 23일에 일어난 일:
1627년 - 후금(청나라)이 조선을 침입한 정묘호란 발발.
1904년 -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명의로 한일의정서가 체결되다.
1960년 - 미 해군 잠수정 트리에스테가 2호가 마리아나 해구 10,916 m (35,814 ft) 깊이까지 잠수하다.
1998년 - 토네이도가 미국 플로리다주 중부를 강타해 2,600개의 건물이 파괴되고 42명이 죽다.
1999년 - 눈사태로 오스트리아 갈투르 마을이 파괴되고 31명이 죽다.
오늘의 묵상: 정묘호란
1627년 2월 23일, 397년 전 오늘, 후금(청나라)이 조선을 침입한 정묘호란이 발발했습니다.
압록강 북쪽에 있던 여진족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과 명나라가 국력이 쇠퇴하자 점점 힘을 키워 나가기 시작하여 누르하치가 1616년 후금을 세웠습니다. 당시 조선과 명나라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힘쓰고 있을 때, 세를 불리던 후금은 결국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고 전쟁이 시작됩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도와준 공을 말하며 조선에게 배후에서 후금을 공격하기를 강요했습니다. 광해군은 결국 강홍립을 대장으로 군대를 보내긴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시 후금에게 투항토록 했습니다. 이런 중립외교에 불만을 품은 당시의 서인들은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으로 추대하는 인조반정을 일으킵니다. 그후 조정을 장악한 서인들이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자 이에 후금은 1627년 3만명의 병력으로 조선을 공격하니 이것이 정묘호란입니다.
조선은 처음에 후금의 군대에 계속해서 패퇴하여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했지만,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후금의 보급선이 차단되는 등 전쟁이 어렵게 되자, 어차피 후금의 주적은 명나라였기 때문에, 후금은 조선과 화의를 맺게 됩니다.
이 조약에서 후금군은 즉시 철병할 것, 후금군은 철병 후 다시 압록강을 넘지 말 것, 양국은 형제국으로 정할 것, 조선은 후금과 화약을 맺되 명나라와 적대하지 않을 것 등의 조건과 더불어 조선은 후금에게 공물을 제공하는 한편, 종실인 원창군을 인질로 보내면서 후금이 철수하게 됩니다.
그 후 더욱 강성해진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조선에게 형제의 관계를 넘어 군신의 관계를 요구하였지만 조선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청나라가 다시 쳐들어오니 이것이 1637년 1월(음력 1636년 12월)에 일어난 병자호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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