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3월 25일에 일어난 일:
708년 - 콘스탄티노, 제88대 교황으로 즉위.
1908년 - 창경궁이 창경원이 되다.
2002년 - 아프가니스탄 북부 강진. 최소 2000명 사망.
2003년 - 미국 LA법원, 스팸메일에 첫 실형 선고.
오늘의 묵상: 창경궁과 오욕의 창경원
1908년 3월 25일, 116년 전 오늘, 창경궁이 창경원이 됐습니다.
창경궁은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이 1484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입니다. 성종은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 보완하면서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과 관련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 즉위 후 일본은 순종의 무료함을 달래는 황실의 위안시설이라는 명분으로 창경궁의 전각을 허물고 동.식물원을 만들기로 합니다. 하지만 숨겨진 의도는 황실 권위의 상징인 궁궐을 훼손해 국권을 말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튼 순종 황제 살아생전 매주 목요일에는 창경원이 문을 닫았습니다. 순종이 창경원을 산책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사는 1908년 4월에 시작돼 1년 6개월가량 진행되어 1909년 여름 순종황제와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우선 관람했으며 그해 11월 1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됐습니다. 일본은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잇는 길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뚫어 서로 동떨어지게 만들고, 일본의 상징인 벚나무(사쿠라)를 수천 그루 심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동물원 공사를 주도했던 이토 히로부미 통감은 개원식 닷새 전에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하여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공사가 감행되는 동안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창경궁의 화려하고 웅장했던 전각은 허물어졌고, 전각의 문이나 기와 등은 해체돼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대신 조선 백성들은 일제가 심어 놓은 벚나무에 만개한 벚꽃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창경원 벚꽃 놀이'와 창경원 놀이터 방문은 서울을 비롯한 전 국민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위락시설로 남았다가 1983년 7월 1일부터 관람을 중단하고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12월 30일에 다시 창경궁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시민공원이며 최대의 유원지였던 창경원은 1986년에 다 철거되어 동물원 기능은 서울동물원(현재 서울대공원)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역사속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 속 오늘, 3월 27일: 35년 전, 문익환 목사 일행 김일성 주석과 면담 (2) | 2024.03.27 |
---|---|
역사 속 오늘, 3월 26일: 14년 전, 천안함 피격 (1) | 2024.03.26 |
역사 속 오늘, 3월 24일: 421년 전, 제임스 1세 통합 영국 국왕 (1) | 2024.03.24 |
역사 속 오늘, 3월 23일: 116년 전, 대한제국 외교고문 스티븐스 저격 (0) | 2024.03.23 |
역사 속 오늘, 3월 22일: 62년 전, 윤보선 대통령 하야 (0) | 2024.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