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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4월 6일: 118년 전, 평민 의병장 신돌석 거병

해양맨 2024. 4. 6. 00:00

역사 속 오늘, 4월 6일에 일어난 일:

1199년 -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리처드 1세가 어깨에서 화살(석궁)을 제거한 후 감염으로 사망하다.
1896년 -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열리다.

1906년 - 의병장 신돌석, 경북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키다.
1917년 - 미국 상선이 독일 제국 잠수함에 격침되었다는 이유로 미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하다.(제1차 세계대전)
2009년 -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주 라퀼라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6 지진으로 150명 이상 사망.

 

오늘의 묵상: 일본군이 두려워한 평민 의병장 신돌석

1906년 4월 6일, 118년 전 오늘, 최초의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이 경북 영해에서 거병했습니다.

 

1895년 명성황후의 시해사건단발령을 계기로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신돌석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1896년(고종 33) 영해에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재개되자 1906년 4월 6일(음력 3월 13일) 의병 800여 명을 모아 신돌석이 사는 마을인 경북 영해에서 재차 의병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후 1908년 12월 12일 순국할 때까지 2년 8개월 동안, 영덕과 울진을 넘나들며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 터를 잡은 일제의 전초기지, 이를 지원하는 일본인 및 우편취급소, 통감부 말단 기관을 척결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울진에 정박 중이던 일본 배 9척을 격침시키고, 일본군 수비대와 여러 차례 격전을 벌여 크게 승리하면서 일본군은 신돌석 장군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가 의병부대를 게릴라 식으로 신출귀목하게 운영함으로써 큰 전과를 올리자 일제는 그를 회유하고자 귀순권유서를 보냈지만 그는 불살라 버렸습니다.

충의사에 봉안된 신돌석 장군의 영정.

 

하지만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렸던 신돌석은 현상금을 노린 사촌 형제의 손에 죽임을 당해 31살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고, 1971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했습니다. 1999년에는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신돌석장군유적지가 조성되어 '충의사'를 비롯해 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위치한 의병대장 신돌석장군 유적지. 맨 위의 건물이 그의 영정을 모신 '충의사'.

 

의병대장 신돌석장군 유적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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