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4월 21일에 일어난 일:
BC753년 - 로마왕국 건국일
1903년 - 러일전쟁의 시초가 된 러시아의 용암포 점령.
1944년 - 프랑스의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다.
1967년 - 그리스에서 육군 대령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다.
2006년 -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 입헌군주제 실시 발표.
오늘의 묵상: 용암포 점령과 러일전쟁
1903년 4월 21일, 121년 전 오늘, 러시아가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를 점령하여 러일전쟁의 긴장감을 고조시켰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북방정책을 세우고, 요동반도와 만주를 차지한 러시아는 한반도를 차지하려고 남방정책을 폅니다. 이 두나라의 대결은 결국 1904년 2월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데, 그 전쟁의 원인이 된 사건이 바로 러시아의 용암포 점령입니다.
1896년 이후 러시아는 두만강과 압록강유역의 삼림채벌권을 차지하여 1903년 본격적으로 벌채에 나서게 됩니다. 1903년 4월에는 러시아가 자국민보호를 목적으로 벌목 목재 집산지인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용암포에 100여 명의 군대를 보내면서 러. 일. 청 3국의 국경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후 러시아는 용암포를 '포트 니콜라이'로 바꾸고 포대를 쌓고 러시아령으로 표시했으며, 의주에 다수의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1903년 5월 상순). 그해 7월 20일에는 조선과 용암포 조차(임대) 조약을 체결했지만, 러시아의 팽창을 경계하는 열강국들의 반발로 조차는 취소되고 용암포는 1904년에 통상구안(通商口岸)으로 개항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작은 포구를 둘러싼 이권다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용암포를 기점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을 따라 1,300km에 이르는 방책선과 요새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산림이권 독점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결국 조선은 조차를 취소하고 개항을 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일본과 러시아의 대립은 극에 다달았고 결국 이듬해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용암포 개항 사건 전후로 조선에서는 러일전쟁 개전설이 떠돌았지만 조정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고종은 즉위 40주년, 50회 탄신을 기념하여 1903년 7월 25일 덕수궁 뜰에서 3,000여 명의 대신들과 외국사신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역사속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 속 오늘, 4월 23일: 105년 전, 한성 임시정부 수립 (0) | 2024.04.23 |
---|---|
역사 속 오늘, 4월 22일: 107년 전, 독립운동가 이상설 사망 (1) | 2024.04.22 |
역사 속 오늘, 4월 20일: 75년 전, 국민보도연맹 창립_보호와 인도? (0) | 2024.04.20 |
역사 속 오늘, 4월 19일: 64년 전, 4.19 혁명 발발 (0) | 2024.04.19 |
역사 속 오늘, 4월 18일: 16년 전,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0) | 2024.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