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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6월 2일: 54년 전, 김지하와 오적 필화사건

해양맨 2024. 6. 2. 00:00

역사 속 오늘, 6월 2일에 일어난 일: 

1942년 - 미드웨이 해전이 시작되었다.
1953년 -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열렸으며, 대관식이 영국 역사상 최초로 TV로 생중계되었다.

1970년 - 〈오적〉 필자 김지하와 사장 부완혁 등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1993년 - 한국 최초 잠수함 장보고함, 진해 기지에서 취역.

1994년 - 영국 공군 소속의 CH-47 치누크가 스코틀랜드에서 추락하여 29명 탑승자 전원 사망.
2023년 - 인도 오디샤 주에서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하여 200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늘의 묵상: 오적 필화사건과 김지하

1970년 6월 2일, 54년 전 오늘, 〈오적〉의 필자 시인 김지하와 사장 부완혁 등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박정희정권 시기에는 필화사건이 끊이지 않았는데, 1960년대에는 ‘이영희필화사건’, ‘분지필화사건’ 등이 있었고, 1970년대는 더욱 언론과 문인 통제를 강화하며 필화사건은 더욱 증가했습니다. 1970년대 대표적인 필화사건이 ‘오적필화사건’입니다.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김지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오적’이라 지칭하며, 그 치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판소리 형태의 담시(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서사시) 「오적」을 1970년 5월에『사상계』를 통해서 발표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오적」의 유포를 막을 요량으로 『사상계』의 시판을 중단시켰는데, 「오적」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은 야당인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6월 1일 자에 「오적」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6월 2일 새벽 1시 50분쯤 중앙정보부와 종로경찰서 요원들에 의해 『민주전선』10만여 부가 압수되고, 6월 20일 김지하 시인 및 『사상계』대표 부완혁, 편집장 김승균, 『민주전선』출판국장 김용성 등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받는 시인 김지하, 사상계 대표 부완혁, 편집인 김승균(왼쪽부터). 이 사건으로 폐간조치되어 마지막 호가 된 ‘사상계’ 1970년 5월호.


검찰은 시 「오적」이 “계급의식을 조성하고 북한의 선전 자료로 이용되었다”는 이유로 유죄를 주장했지만, 김지하는 법정에서 “담시 「오적」은 일부 몰지각한 부정 부패자와 이의 단속에 나선 경찰 비위에 대한 권선징악을 판소리 형식으로 풍자한 것이며 계급의식을 고취시킬 의도는 없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사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1년 앞두고 정치권력과 사회 지배층의 부정·부패를 노골적으로 꼬집은 시인과 이 시를 활용한 야당을 박정희 정부는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시 「오적」을 실었던 월간 『사상계』는 그 여파로 등록을 취소당했는데, 그 이유는 자체 인쇄소를 지니지 못한 출판사의 경우 인쇄 계약을 체결한 인쇄소 책임자를 잡지의 인쇄인으로 등록하라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사상계사는 등록취소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1971년 10월 26일 서울고법 특별부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시인 김지하는 100일 동안 수감되어 재판을 받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습니다.

 

시집 '오적'에 나온 삽화.

 

소리꾼 임진택은 '오적'을 판소리로 만들어 전국을 다니며 공연했다.

 

김지하는 오적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의도적으로 ‘개 견(犬)’을 변(犭)으로 하여 ‘개’를 연상하게 하고 또 ‘원숭이’를 뜻하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를테면, 재벌의 재(財)는 미친개 제(狾), 국회의원의 회(會)는 간교할 회(獪), 의(義)는 개 으르렁거릴 의(狋), 원(員)은 원숭이 원(猿), 고급 공무원의 원(員)은 돼지 원(獂), 장성의 성(星)은 성성이(오랑우탄) 성(猩), 차관의 차(次)는 개 미칠 차(犭差)를 차용하는 식으로...

 

[오적]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중략]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狾䋢), 국회의원(獪狋猿), 고급공무원(跍礏功無獂), 장성(長猩), 장차관(瞕搓矔)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중략]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 집 솟을대문,
바로 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하매, 포도대장 이 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 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 속에서 내내 잘 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 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끝]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한 김지하는 담시를 통한 현실 풍자와 정권 비판을 멈추지 않다가 결국 1974년 4월에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로 체포되어 7월에 내란선동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일주일 후 종신형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는 복역 10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지만,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글을 빌미로 다시 구속되어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한국의 대표적 저항시인 김지하는 5.18의 피바람이 광주를 휩쓸고 간 1980년대 말까지 감옥에 갇혀있다가, 그 후 한국의 전통 사상 및 철학을 토대로 많은 시를 쓰다가 2022년 5월 8일 8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저항시인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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