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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6월 4일: 김일성과 보천보 전투

해양맨 2024. 6. 4. 00:00

역사 속 오늘, 6월 4일에 일어난 일: 

1592년 - 임진왜란: 상주 전투 발발.

1920년 - 대한독립군, 홍범도 지휘 하에 만주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

1937년 - 동북 항일 연합군, 혜산진 보천 주재소 습격(보천보 전투).
1940년 - 2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 영국, 프랑스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했다.
1942년 - 2차 세계대전 중 하나인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결정지은 미드웨이 해전이 발발했다.
1952년 - 문교부장관 백낙준의 건의로 교육자치제가 실시, 각 시청/구청 학무과가 독립, 교육청으로 창설되었다.
1989년 - 베이징 천안문 사건 발생.
2011년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서 규모 5.6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오늘의 묵상: 김일성과 보천보 전투

1937년 6월 4일, 87년 전 오늘, 일제강점기에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이 함경북도(현재의 양강도) 갑산군 보천면 보천리 주재소(지금의 파출소)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보천보 습격 또는 보천보 전투는 1937년 6월 4일 밤, 약 100명의 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최현, 김일성 부대가 압록강을 넘어 혜산진에서 20km 떨어진 보천보를 습격하고 퇴각하던 중에 혜산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전투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파장은 매우 컸는데,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무기정간에서 해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동아일보가 1937년 6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한 호외를 발행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1937년 6월 7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6월 4일 보천보 습격 당시 민간인 2명(성인 요리사, 일본 순사부장의 딸 2세 여아)이 사망했으며, 6월 5일 파견된 30명의 경찰추격대와 충돌하여 동북항일연군 25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당했으며, 일본 경찰추격대는 30명 중 7명 사망, 14명의 부상자가 났으며, 전소한 총피해액은 5만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1937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호외.

 

보천보 전투가 군사적으로는 별로 큰 의미가 없는 단순한 소동에 불과했지만 이 사건은 일본군이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당시 땅에 떨어졌던 조선인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한몫을 했습니다. 1934년 이후 시들해진 독립투쟁과 만주국에서 기세를 잡은 일제를 보며 시름만 깊어가던 조선인들에게 동아일보의 '보천보 습격' 기사는 김일성을 일약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보천보전투로 대표되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성과는 광복 이후 그가 귀국한 뒤 북한 지역에서 강력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올라서는 데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김일성의 그 어떤 업적보다 '보천보 전투'의 항일무장투쟁을 크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한의 대표적인 신문에서 당시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일성 우상화의 일환으로 보존하고 있는 '보천보 전적지'를 찾은 북한 주민들.

 

한편 일본군은 보천보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동북항일연군 대토벌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1939년부터 일본군, 만주군 등 70여만 명을 동원한 대토벌작전에서 동북항일연군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생포되었고, 김일성을 비롯한 생존 병력들은 소련 등으로 탈출함으로써 만주에서의 무장투쟁은 종료됩니다. 또한 보천보 전투에 도움을 주었던 조국광복회도 대부분 검거되어 조직이 궤멸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참고로, 동북항일연군은 1936년 중국공산당 지도 아래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인과 중국인의 유격부대를 중국공산당의 주도로 통합한 다민족 연합 군사조직입니다. 최용건, 김책, 김일, 김일성, 최현, 오진우, 리을설, 최광 등도 이 항일연군에 참여했습니다. 동북항일연군은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물자보급을 받았고 만주국으로부터도 무기 등을 지원받았습니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동북항일연군의 조선인들은 북조선인민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에 참여하게 됩니다.

 

동북항일연군의 전성기에는 참여인원이 1만 명이 넘어 일본제국의 만주 및 중국 침략에 커다란 장애였습니다. 동북항일연군은 한반도 내로 진공작전을 펼치기도 해,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도 위협을 주었는데, 1937년에 제1로군 제2군 제6사(사장은 김일성)의 보천보 습격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어 국내외에 크게 알려졌습니다.

동북항일연군 출신들. 왼쪽부터 최용건, 김책, 김일, 김일성, 강건.

 

한 때 김일성 가짜설이 널리 퍼져 있기는 했으나 현재 학계에서는 폐기된 학설이며, 김일성이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항일유격전을 지휘한 것도 맞고, 보천보 전투를 주도한 것도 사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 중 일부는 과장되거나 날조된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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