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7월 19일에 일어난 일:
1870년 - 프랑스 제2제국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 왕국에 선전포고하면서 보불전쟁 발발
1947년 - 몽양 여운형 암살
1965년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90세의 나이로 하와이에서 사망
1989년 -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가 발생 (111명 사망, 185명 생존)
2007년 - 샘물교회 선교단 20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됨
오늘의 묵상: 여운형 암살
1947년 7월 19일, 77년 전 오늘, 몽양 여운형이 암살되었습니다.
여운형은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1900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흥화학교와 우무학당에서 수학하고, 평양의 장로교회연합 신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후, 1914년 중국 난징의 금릉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조선중앙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쓴 정치인이며 독립운동가입니다.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대립의 와중에서 그는 1946년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간 후 김규식과 더불어 좌우합작운동을 벌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좌우합작운동 실패 후 잠시 정계를 떠났던 여운형은 1947년 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정계에 복귀하여 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성공에 힘을 기울였지만, 이 와중에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달리는 차 안으로 난입한 괴한에 의해 총격을 받고 암살당하였습니다.
총격 후 범인은 곧바로 도주했는데, 이후 경찰은 한지근이라는 청년을 체포한 후, 이 사건을 그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종결하였습니다. 한지근은 미성년자라고 나이를 속여 사형을 면하였으나 곧바로 일어난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끌려간 뒤 그의 생사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운형 암살은 극우테러 단체들이 여운형의 좌우합작 노선에 불만을 품고 그를 제거한 사건이었다고 판단이 났습니다. 그러나 여운형 암살사건 가담자들이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의 집을 근거로 활동했음에도 경찰에 의해 적발되지 않았다는 점, 여운형이 여러 차례 테러를 당했음에도 그 배후와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었다는 점, 암살사건 발생 이후 경찰이 사건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 등을 보았을 때, 경찰 역시 이 사건을 사실상 방조했다고도 평가되고 있습니다.
평생 극우파와 극좌파의 암살과 테러에 시달리다가 살해당한 여운형의 영결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60여만 명의 추모인파가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 (2005년)과 대한민국장 (2008년)을 수여했습니다.
여운형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https://legendary-engineer.tistory.com/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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