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인물이 되기를 꿈꾸는 모든 자들에게... 자세히보기

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7월 1일: 마산, 창원, 진해 통합

해양맨 2023. 7. 1. 00:00

역사 속 오늘, 7월 1일

절기 및 기념일: 여경의 날 (대한민국)

 

역사 속 오늘 7월 1일에 일어난 사건은:

1863년 - 미국 남북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게티즈버그 전투 시작 (7월 3일까지)
1867년 - 캐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1903년 - 제1회 투르 드 프랑스 (도로 사이클 경기) 개최
1916년 - 1차 세계대전: 양군 합쳐 1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제1차 솜 (Somme) 전투 시작 (11월 18일까지 지속)

1948년 - '대한민국'의 국호 제정 ('한국'은 탈락한 국호 후보 중 하나)

1954년 - 일본의 자위대 조직
1967년 - 유럽 공동체(EC) 결성

1981년 - 대구와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

1989년 -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
1997년 - 영국의 조차지였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됨
2010년 - 마산, 창원, 진해가 창원시로 통합
2011년 - 독일 징병제를 폐지
2021년 -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오늘의 묵상: 마산, 창원, 진해 통합

2010년 7월 1일, 13년 전 오늘,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하여 창원시가 되었습니다.

 

창원시는 1980년에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로서 마산시 (1949년)나 진해시 (1955년) 보다 나중에 생겼는데 어떻게 세 도시가 합쳐지면서 창원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 지역 일대가 원래 창원 부였는데 일제강점기에 마산부 (1910년)와 창원군 (1914년)으로 나뉘고, 그 후 1949년 마산부가 마산시로, 1955년에는 창원군에서 진해시가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창원군 산업단지에 계획도시가 들어서면서 1980년에 창원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창원부에서 세 개로 갈라졌던 도시들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면서 이제야 제 이름을 찾게 된 것입니다. 원래 '창원'이란 명칭은 조선 태종 때 의현과 회현을 통합하면서 창원부로 된 것에서 유래하며, 본래의 두 지명은 현재도 의창구와 회원구로 남아 있습니다. 통합 후 창원시는 인구 100만이 넘었으며 2022년에는 특례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산시와 진해시의 이름이 사라진 지 13년이 지난 오늘, 마산과 진해시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각 지역 간의 갈등을 얼마나 잘 극복하고 서로 화합하느냐가 통합 창원시의 과제라고 봅니다. '부담은 적게, 혜택은 많게'라는 기대감으로 출발한 대한민국 자율통합 제1호 창원시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2023년 11월 9일 추가 보완>>

통합 이후 합친 도시를 다시 분리하자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통합 창원시의 상권이 구 창원시의 중심지역으로 쏠리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반면, 마산과 진해 지역은 상대적 박탈감을 당하고 있는 것이 주요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세 도시를 통합하면서 주민들의 직접적인 의사 결정인 주민투표를 하지 않고, 정치인들이 주도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지역 간 통합이 성공하려면:

첫째, 통합을 정치인들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 주민의 여론을 반영하여 통합 여부를 결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 지역 간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소지역주의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공정한 정책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셋째, 지역 간 불균형과 소외지역 갈등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개발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할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