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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2월 23일: 73년 전, 월튼 워커 장군 사망

해양맨 2023. 12. 23. 00:00

역사 속 오늘, 12월 23일에 일어난 일:

1888년 -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귓볼을 자르다.

1901년 - 최초로 무선통신을 통해 오디오 신호를 전송하였다.
1950년 - 6.25 전쟁의 인물 월튼 워커 장군이 사망했다.

1972년 - 박정희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다.
1990년 -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분리하는 투표에 찬성하다.


오늘의 묵상: 월튼 워커 장군 사망

1950년 12월 23일, 73년 전 오늘 월튼 워커 장군이 사망했습니다.

 

월튼 해리스 워커 (Walton Harris Walker)는 6.25 전쟁 당시 주한 미 제8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순직했습니다.

 

워커는 주일 연합군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로부터 북한군을 공격하여 원래 위치인 38선 이북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으로 후퇴를 거듭하여, 마침내 낙동강에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워커는 예하 지휘관들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라 (Stay or die)"고 독려했습니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워커 장군의 무모하리만치 목숨을 건 낙동강 전투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며 시간을 번 덕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워커 중장의 "Stand or die"란 무자비한 명령은 미국 의회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며 "미국 국민이 아닌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미국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게 마땅한가?"라는 등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아들 샘 워커 대위도 한국전에 참전했었는데, 아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내린) 은성무공훈장을 받게 되어 직접 전달하러 가던 중에, 안타깝게도 한국군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1950년 12월 23일, 오전 10시경 워커 장군 일행이 탑승한 지프차가 의정부 근처 미 24사단으로 이동 중, 길가에서 수리를 마치고 시험운전을 위하여 출발하던 한국군 트럭이 마주 오던 워커 중장이 탑승한 지프의 측면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지프는 전복되고 워커 중장은 지프의 앞유리창을 깨고 창밖으로 튕겨나가 땅바닥에 부딪히면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즉사한 뒤였습니다.

 

1950년12월23일 서울 도봉동에서 전사한 미국 제8군사령관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동상 (평택 주한 미8군사령부 소재).

 

'워커 라인'으로 불리는 낙동강 전선에서 "사수하느냐 죽느냐 (Stand or die)"의 선택밖에 없고, "여기서 밀리면 수많은 전우가 죽는다"라며 목숨을 바쳐 한국을 지키고자 했던 한국전쟁의 영웅은 그의 상관이던 맥아더에 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을 생명처럼 사랑했던 미국인이며 참 군인인 월튼 해리스 워커 중장은 사후 대장으로 추서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에서의 영웅적 공로로 수훈십자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훈했습니다.

 

월튼 워커 장군과 아들 샘 워커 장군(우측). 미군 역사상 최초로 부자가 4성 장군을 역임.

 

장군을 기리기 위해 워커(장군)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워커힐 호텔"이 생겨났습니다. 이 호텔은 1963년 4월 8일에 개관하여 주한 미군과 유엔 장병들이 휴가를 즐길수 있도록 카지노와 화려한 쇼가 열리면서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부의 대명사 같은 곳으로 알려지면서 워커장군과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을 추모한다는 본래 취지가 바래진 면도 있습니다.

 

훗날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 역시 주한미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했다. 지난 2023년 7월 서울 워커힐 호텔을 방문한 샘 워커 2세 부부가 할아버지이자 한국전쟁 영웅이었던 고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의 생전 애장품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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