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2월 22일에 일어난 일:
1894년 - 드레퓌스 사건: 유대계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반역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음.
1905년 - 베이징에서 청일조약 조인.
1909년 - 을사오적의 이완용이 이재명에게 피습되었다.
1977년 - 수출 100억 불의 날: 대한민국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돌파함과 동시에 GDP 1,000달러를 돌파했다.
1989년 - 루마니아 혁명: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가 끝나고 이온 일리에스쿠가 루마니아의 대통령이 되다.
1997년 -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석방되었다.
1999년 - 런던발 밀라노행 대한항공 8509편 화물기가 이륙 직후 런던에 추락해 승무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오늘의 묵상: 이완용 이재명에게 피습
1909년 12월 22일, 114년 전 오늘 을사오적의 이완용이 이재명에게 피습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인 이재명은 을사오적인 이완용을 암살하기 위해 명동성당에서 돌아오는 그를 단도로 습격했으나 미수에 그쳤으며 재판소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10년 9월 30일 순국하였습니다. 그에게 해방 이후 1962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이 추서 되었습니다.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이완용이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재명은 군밤 장수로 변장하고 있다가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려는 이완용의 허리와 어깨를 칼로 3번 찔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완용과 이재명 사이를 막아섰던 인력거꾼이 칼에 찔려 사망하였고, 부상당한 이완용은 당시로서는 일본인 의사로부터 최고 수준의 치료와 대수술을 받은 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흉부외과 수술 제1호였다고 합니다.
그 이듬해 1910년 9월 30일, 이재명은 경성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22세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이완용은 살아났지만 인력거꾼을 죽인 것으로 사형이 선고된 것이었습니다. 이때 순국 직전에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는 끝까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지만 김병록 등 동지 10여 명도 최고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비록 이재명 의사가 이완용을 죽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완용은 이때 입은 상처 때문에 17년간 폐렴을 고질병으로 달고 고생하며 살다가 결국 1926년에 그로 인해 죽게 됩니다.
여담으로 후대의 동명이인 정치인인 이재명과 본관은 다르나 한자 이름도 똑같고 그의 생일이 이재명 의사의 의거일인 12월 22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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