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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12월 28일: 17년 전, 12.12 사태 헌병감 김진기 사망

해양맨 2023. 12. 28. 00:00

역사 속 오늘, 12월 28일에 일어난 일:

1894년 - 동학 농민 운동 지도자 전봉준 체포됨
1926년 -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
1945년 - 모스크바 3상회의, 한국에 대해 5년간 신탁통치 결정.

2006년 - 12.12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 육군 헌병감 김진기 준장 사망.
2014년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다.

 

오늘의 묵상: 헌병감 김진기 준장

2006년 12월 28일, 17년 전 오늘 12.12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 측 육군 헌병감 김진기 준장이 사망했습니다.

 

김진기 장군장태완, 정병주, 하소곤 장군 등과 더불어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한 진압군 측 장군 중 1명입니다. 그는 1979년 육군본부 헌병감으로 재직 중 10.26 사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 작전을 직접 지휘하여 김재규를 국군보안사령부로 인계했습니다. 하지만 50여 일 뒤 전두환 등 하나회 일당에 의해 일어난 12.12군사반란은 결국 막아내질 못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정승화 총장이 불법 연행되었을 때 전두환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지하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체포 승인을 받기 위해 총리공관에 머물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체포하라고 명령했지만 헌병 경비 병력들이 하나회 병력인 대통령 경호실 병력에 의해 무장해제되며 실패했습니다.

 

김진기는 최규하 대통령을 구출하려 했지만 하극상으로 인한 병력 부족으로 좌절되었고, 그 후 그는 국군보안사령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다가 결국 1980년 예비역 준장으로 자진 예편하고 군을 떠나게 됩니다.

 

예편 후 수원에서 농사를 짓다 반란군 주역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피하여 사람들 눈에 안 띄는 보문도라는 섬에 들어가 광어 양식업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 등으로 전두환 정권이 무너진 후 그해 11월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했습니다. 그러나 정병주 장군은 이듬해인 1988년 10월 16일 밤에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다가 실종 139일 만인 1989년 3월 4일에 경기도 한 야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정 장군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됐습니다.

 

김진기는 1995년 12월 12일 정병주 장군의 서울현충원 무덤 앞에서 MBC와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12.12는 철저하게 소수 정치군인들이 권력에 눈이 어두워서 저지른, 권력을 위한 쿠데타였습니다. 동료는 물론이고 상관까지도 살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방비가 없는 상급사령부에 대해서 무차별 공격을 했고, 마치 점령군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쿠데타 역사에 유례가 없는 가장 치욕적인 부끄러운 쿠데타입니다."

 

1995년 12월 12일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의 서울현충원 무덤 앞에서 MBC와 인터뷰를 하는 김진기.

 

이후 김진기는 노태우 정부에서 이런저런 보직을 제의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가 90년대 문민정부에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2006년 12월 28일 지병으로 7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나서 2006년 12월 28일 이 세상을 떠났다'라는 내용만 새겨져 있습니다. 12.12 반란군에 맞서 싸운 군인이 남긴 단 한 줄의 메시지를 보노라면 한줄기의 눈물이 흐릅니다. 온갖 미사여구로 새겨진 다른 묘비보다 초라해서만은 아닙니다...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 잠든 김진기 헌병감의 묘.

 

영화 '서울의 봄'에서 김진기 헌병감 역 배우의 포스터.

 

 

https://legendary-engineer.tistory.com/312

 

역사 속 오늘, 12월 12일: 44년 전, 12.12 군사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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