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2월 10일에 일어난 일:
1258년 - 바그다드가 몽골 제국에 함락되고 압바스 왕조가 멸망하다.
1763년 - 7년 전쟁 종결을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파리 조약 체결
1948년 - 백범 김구가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란 제목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반대 성명을 발표하다.
1951년 - 거창양민학살사건 발생.
2008년 -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되다.
오늘의 묵상: 숭례문 방화
2008년 2월 10일, 16년 전 오늘,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되었습니다.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50분 즈음 숭례문 2층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이 화재 진압에 총력을 다했으나 화재 4시간 즈음에는 2층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바로 1층에 불이 붙어 숭례문의 기본 뼈대들과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반을 남긴 채 모두 붕괴된 다음 5시간 만에 1층 누각의 90%, 2층 누각의 10%만 남긴 채 소실되었습니다.
방화범인 채종기는 당시 철학관을 운영하던 70세 남성으로 택지개발에 따른 자신의 토지에 대한 보상액에 불만을 품고 방화를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원래 종묘에 불을 지르려 했는데 경비가 삼엄하여 표적을 숭례문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문화재를 계속해서 방화한 이유는 경비가 허술해 접근하기 쉽고 인명 피해가 나지 않으며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2006년 4월 26일에도 같은 이유로 창경궁에 불을 질러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300만 원을 선고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채종기는 현장 검증 자리에서 당시 대통령에게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노무현의 잘못이 99.9%, 내 잘못은 0.1%',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잖아.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는 망언을 하여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70대 노인이 개인의 욕심과 분노에 눈이 멀어서 문화재를 불태웠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는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에 만기출소 했습니다.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은 이 사건으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그는 "숭례문의 운명과 나의 운명은 오버랩이 됐다. 내가 아무리 문화유산에 대해서 잘했다고 할지라도 국보 제1호 숭례문 화재 시절에 문화재청장이었다는 것은 죽고 난 다음에도 기록에 남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소방관들을 대신해 기와를 뜯어냈을 것이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일반적인 전통 가옥 화재 진압 시에는 가장 먼저 지붕을 뚫어야 제대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의 지붕을 바로 뚫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째는 숭례문이 국보 1호 문화재였기 때문에 초기에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서지 못했고, 둘째는 불길이 잡히지 않자 지붕을 뚫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숭례문의 지붕이 일반 전통 가옥의 지붕보다 훨씬 단단했기 때문에 지붕을 뚫지 못했습니다. 결국 붕괴 위험으로 소방 인력은 누각에서 먼저 철수하고 지붕에서도 철수하였으며 이후 지붕이 붕괴하였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2월 10일을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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