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2월 16일에 일어난 일:
1921년 - 친일파 민원식이 독립운동가 양근환의 칼에 찔려 도쿄제국대학 병원에 이송되다.
1958년 - 창랑호 납북 사건 발생.
2005년 -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 의정서가 발효되다.
2014년 -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관광버스 폭탄테러로 성지순례 중이던 한국인 3명 포함, 총 5명 사망.
오늘의 묵상: 창랑호 납북 사건
1958년 2월 16일, 66년 전 오늘,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사의 여객기 창랑호가 경기도 평택시 상공에서 북한의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항공기 납치사건으로, 부산발 서울행 대한국민항공사 소속 창랑호(더글러스 DC-3) 여객기는 기장 윌리스 P. 홉스와 부기장 멕클레렌 미 공군 중령이 조종을 하였으며, 승객 30명과 승무원 3명 등 33명을 태우고 오전 11시 30분 이륙한 후, 경기도 평택군 (현 평택시) 상공에서 납치되어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강제 착륙 당하였습니다.
당시 북한은 언론기관을 통하여 "대한국민항공사가 '의거월북' (자신의 의지로 군사분계선을 넘음) 했다"라고 거짓 발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월 22일 국회에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를 행하고, UN군에 참가한 16개국에게 협력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UN군은 2월 24일의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승객과 승무원, 기체의 조속한 송환을 북한에 요구하여, 1958년 3월 8일 납치범으로 생각되는 7명을 제외한 모든 승객과 승무원, 총 26명이 대한민국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대한국민항공사는 만송호, 창랑호, 우남호 등 단 3대의 항공기로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창랑호가 납북당하기 전에 이미 만송호가 부산 수영비행장에 착륙하던 도중 기체가 크게 파손되어 전손처리된 상황에서 우남호 하나만으로 항공사를 운영해야만 했기 때문에 적자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한국민항공사는 만송호의 전손처리와 창랑호의 납북으로 인한 적자를 끝내 해소하지 못하고, 1961년 7월 창업주이자 사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하며 대한국민항공사는 그해 11월 폐업처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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