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3월 10일에 일어난 일:
1019년 -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 침공을 토벌한 귀주 대첩 승리.
1898년 - 독립협회, 첫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다.
1938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안창호 사망.
1945년 - 제2차 세계 대전: 미 공군 B-29 폭격기의 도쿄 대공습 감행.
2017년 -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됨.
오늘의 묵상: 도산 안창호
1938년 3월 10일, 86년 전 오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1897년, 서재필·이승만·유길준·윤치호 등이 주관한 독립협회에 가입하였으며, 이상재, 윤치호, 이동녕, 이승만, 양기탁 등과 함께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실력양성론과 함께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발판이라 생각해 1899년(광무 2년) 점진학교, 1908년(융희 2년) 대성학교, 1926년 중국 난징에 동명학원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의 영향력이 강대해지자 미국으로 망명,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9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승만, 박용만과 함께 대한인국민회를 조직, 주도하였으며, 1913년에는 흥사단을 조직하는 등 재미한인단체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1919년 4월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내무총장 및 국무총리 대리직을 맡게 됩니다. 1919년 9월 정식으로 국무총리로 취임하기 위해 상하이로 온 이동휘와 1920년 말에 온 이승만은 서로 강력히 대립하게 됩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규정에 없는 대통령 직책을 사용한 것에 대해 안창호와 갈등을 빚었지만,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은 1919년 9월 6일 이승만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이 국제연맹에 한국의 위임통치안을 건의한 것을 두고 미국에 위임통치를 건의한 것으로 오해받고 비판을 받았으며, 또한 상해 임시정부에서 직접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않고 임시정부 의정원의 결의를 무시하였다는 이유로 1925년 3월 11일 이승만은 탄핵을 당하여 대통령직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1921년, 임시정부가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대통령 이승만과 공산주의와 소련의 보호를 주장하는 국무총리 이동휘의 이념의 차이로 내분에 휩싸이자, 안창호는 국민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중재를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국민대표자회의가 강제 해산되자 그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안창호가 공산주의자라는 투서가 원인이 되어 1926년 미국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가 상하이로 돌아와 있는 동안,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투척 사건으로 연루되어 일본 제국 영사관 경찰의 불심검문에 체포되어 상하이 영사관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송환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경성제국대학 병원에 입원했으나 소화불량과 간경화, 폐질환 등 합병증으로 출옥 직후 사망했습니다.
안창호는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잊혀져 왔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인정하여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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