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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3월 6일: 119년 전, 한인의 멕시코 노동 이민 - 애니깽

해양맨 2024. 3. 6. 00:00

역사 속 오늘, 3월 6일에 일어난 일:

1882년 - 고종이 태극기를 대한제국의 공식 국기로 선포했다.

1905년 - 조선의 이민자들이 멕시코로 떠남.

1926년 - 일제강점기 충북도지사 박중양이 연루된 속리산 법주사의 여승 변사사건 폭로.  
1940년 - 제2차 세계대전: 소련-핀란드 겨울전쟁(Winter War)의 정전 협정 체결.
1991년 - 매년 3월 6일에만 발동하는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의 시작 연도. 안철수의 안티바이러스 V3 등장.

 

오늘의 묵상: 애니깽

1905년 3월 6일, 119년 전 오늘, 조선의 이민자들이 멕시코로 떠났습니다.

 

1905년 멕시코 이민은 단 한차례만 진행된 불법적인 단기 계약 노동 이민이었습니다. 북아메리카로의 이민은 1902년 12월 제물포항을 출발한 미국 하와이로의 노동 이민이 그 시초였습니다. 하와이 이민이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멕시코 이민은 마이어스(John G. Meyers)라는 이민중개인이 불법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이후 멕시코 이민은 다시 추진되지 않았습니다.

마이어스는 멕시코 유카탄주의 에네껜(henequen, 선박용 로프 등을 만드는 선인장의 일종으로 현지어로 애니깽) 농장주협회 대리인 자격으로 1904년 8월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한국은 러일 전쟁으로 사회 분위기가 좋지 못했고, 가뭄 등으로 경제적 궁핍이 심했던 터라 〈황성신문〉에 실린 허위 과장 광고와 하와이 이민의 성공 소식 등은 멕시코 이민을 촉진하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제물포항을 출발한 영국 상선 일포드호는 1,033여 명의 이민자들을 싣고 40일간의 항해 끝에 1905년 5월 4일 오악사카 주 살리나스 크루스 항에 도착했습니다.  계약 기간은 1905년부터 1909년까지 4년으로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유카탄 주의 주도인 메리다(Mérida)였습니다. 이곳에서 한인 이민자들은 20여 개의 에네껜 농장으로 분산 배치되었습니다.

 

1905년 한인 노동자를 싣고 멕시코에 도착한 일포드호(S.S. Iford).

 

에네켄 농장 재현: 한국이민사박물관

 

모집 당시의 광고와 다르게 한인 이민자들은 살인적인 무더위와 노예 수준의 노동 조건 아래서 혹사당했습니다. 당시 대한제국은 멕시코와 어떠한 외교적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멕시코 이민자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계약 기간 동안 각 농장에 고립되었으며, 1909년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웠지만, 1910년 조국이 사라지자 갈 곳을 잃고, 여권도 무효되어, 현지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인 이주민들은 메리다에서 한인회를 조직하여 강제 병합 이후 고국에 독립 자금을 지원하면서 군사 훈련을 가르치는 숭무 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벌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한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고, 1921년 메리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쿠바로 이주하면서 메리다 한인회의 활동도 쇠퇴하게 됩니다.

 

유카탄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이민 1세들의 모습.

 

현재 멕시코와 쿠바 곳곳엔 애니깽의 후손 3만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고국과의 오랜 단절 탓에 외모도 언어도 현지화됐지만 여러 도시에서 한인후손회를 조직해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2021년 멕시코 정부는 매년 5월 4일을 ‘한국 이민의 날’로 제정하기로 했습니다. 유카탄주에서는 2년 전인  2019년에 이미 지정된 바 있지만, 이제 연방차원에서 승인이 난 것입니다.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한 한인이 에네켄 선인장 잎을 자르는 모습 (1950년).

 

“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들의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

특히 왼손은 에네켄 가시에 찔리고 긁혀 하루도 피가 멈출 날이 없었다.

발가락부터 무릎까지 온통 가시에 찔려 항상 몸이 엉망진창이 됐으며

가시가 엉겨 붙은 채 집에 돌아와서는 가시를 빼고 상처를 만졌다.

감독들은 일을 느리게 한다거나 잘못한다고 하여 채찍으로 때리기 일쑤였다.

이와 같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심각한 언어장애와

이질적인 문화로 상당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최병덕 선생의 회상_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여행가는 칸쿤(Cancun)이나 치첸 이사(Chichen Itza)가 있는 멕시코 유카탄에는 119년 전 우리 조상들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하여 애니깽 농장에서 일하다가 졸지에 나라가 없어져 그곳에 정착하게 된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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