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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3월 17일: 54년 전, 정인숙 살해 스캔들

해양맨 2024. 3. 17. 00:00

역사 속 오늘, 3월 17일에 일어난 일:

1933년 - 상해 육삼정 의거: 일본 대사를 암살하려다 실패.

1949년 - 호레이스 호톤 언더우드의 배우자 에델 언더우드 여사 피살당하다.
1970년 - 대한민국 제3공화국의 권력층 스캔들로 번진 정인숙 살해 사건 발생.
2003년 - 미국·영국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동의 없이 이라크 공격을 결정하다.

 

오늘의 묵상: 정인숙 살해 사건

1970년 3월 17일, 54년 전 오늘, 대한민국 제3공화국의 권력층 스캔들로 번진 정인숙 살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인숙 피살사건은 제3공화국 당시인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총격 살인사건으로 고급 요정 종업원인 정인숙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피해자 정인숙은 총상으로 요절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에 관통상을 입었으나 지나가던 택시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요정 선운각의 얼굴마담으로 잘 나가던 정인숙(본명: 정금지)은 당대 최고 권력층과 염문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의 숨겨진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냐를 놓고 여러 설이 나돌면서 이 사건은 제3 공화국 최대의 스캔들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정인숙이 출산한 아이의 유력한(?) 아버지로 소문난 국무총리 정일권과 갈등관계에 있었고, 신민당은 정인숙 피살사건에 정부 고위층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으나 유야무야 묻혀 아직까지 의문사로 남아있습니다.

 

정인숙

 

사고 수사 과정에서 정인숙의 집에서 정관계 고위층의 명함과 권력 실세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는 수첩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 장관, 차관급 인사, 국군 장성, 5대 재벌그룹 회장,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27명을 포함한 수십여 명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해졌고 언론 보도가 수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의혹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됐지만, 당시 사건 수사가 정인숙 여인 주변에 대해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빠의 범행동기가 석연치 않았으며, 중요한 범행현장인 사고차량은 사건발생 몇 시간 만에 다른 곳으로 치워졌고, 무엇보다 범행도구인 권총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인숙 살해 혐의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뒤 1989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정종욱은 당초의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그는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뒤 "동생과 관계했던 고위층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는 아버지의 회유로 거짓자백을 했을 뿐, 집 앞에 있던 괴한들이 동생을 살해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숱한 의문점 때문에 정인숙 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이라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권력기관에 의한 살인’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사건 확산과 자신이 동침한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박정희의 호출에 무릎을 꿇은 정일권은 자신은 정인숙과 사귀긴 했으나 죽이지는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정일권을 바로 해임시키면 세간의 루머만 커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는 잠잠해질 무렵 그를 해임하고 미국으로 내보냈습니다. 

 

1964년 송년 파티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일권 전 국무총리. 정일권은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간 재직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출처 : 피렌체의 식탁(http://www.firenzed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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