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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3월 28일: 898년 전, 이자겸의 난

해양맨 2024. 3. 28. 00:00

역사 속 오늘, 3월 28일에 일어난 일:

1126년 -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다.

1894년 -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홍종우에 피살되다.
1939년 -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마드리드를 점령하면서 스페인 내전이 종결하다.

1993년 -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부산 구포역 북쪽에서 탈선·전복하며 70여 명 사망.
2005년 - 수마트라섬 앞바다에서 규모 8.7의 강진이 일어나다.

 

오늘의 묵상: 이자겸의 난

1126년 3월 28일, 898년 전 오늘, 고려 인종 4년에 이자겸이 왕위 찬탈을 시도했던 '이자겸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이자겸은 자신의 둘째 딸이 예종의 왕비가 되면서 인종을 낳으니 인종은 이자겸의 외손자입니다. 이자겸이 인종에게 또 다른 딸들을 시집보내니, 인종은 이모들과 결혼한 셈입니다. 따라서 이자겸에게 인종은 외손자이자 사위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이자겸은 왕실과의 통혼과 근친혼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예종의 장인이자 인종의 외할아버지이며 장인인 이자겸.

 

이자겸은 인종을 부추겨 뜻에 거슬리는 인물들을 정계에서 몰아내고 국왕에 버금가는 지위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마음대로 관직을 팔아 자신의 친척이나 세력 구성원을 중요한 직책에 앉히고, 명장 척준경을 사돈으로 맞이하여 막강한 군사적 배경까지 갖추게 됩니다.

 

인종은 외조부이자 장인이었던 이자겸의 전횡을 보며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신하들이 척준경의 동생 척준신을 비롯해 이자겸에게 협조하는 인물들을 살해하게 됩니다. 변고를 들은 이자겸과 척준경은 무리들을 이끌고 주모자들의 집에 불을 지른 뒤 가족과 노비들을 가두었습니다. 

 

이윽고 궁성을 포위하여 국왕에게 주모자들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였는데, 이때 이자겸의 아들인 승려 의장이 승병을 이끌고 합류함으로써 그의 세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더구나 척준경이 개경의 왕궁을 불태우자 사지에 몰린 인종은 이자겸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이자겸은 재상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여 선뜻 응낙하지 못하고, 다만 인종을 자신의 집안에 가두고 감시·조종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인종을 감금한 이자겸은 국정을 자의적으로 운영하며, 그해 4월에는 그동안 하대하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신하를 자칭하게 됩니다. 이자겸이 주도하여 금에 대한 사대를 결정했던 것은 당시 한참 기세를 올리던 강국 금나라에 맞서기도 쉽지 않았지만, 전쟁을 피하여 자신의 권력을 보존하려 했던 개인적 욕심이 컸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금 황제는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고 예물로 회유하지 않았음에도 고려가 자발적으로 사대를 청함에 만족을 표하였습니다.

 

또한 이자겸은 인종의 왕비였던 4녀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인종에게 독약을 먹이려고 하였지만, 이 계략은 4녀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이렇게 수모를 당하던 인종은 이자겸과 척준경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끊어놓음으로써 비로소 난국을 타개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지자 평소 기회를 엿보고 있던 최사전은 척준경을 찾아가 “이자겸은 궁중의 세력에만 기대어 신의가 없으니 좋고 나쁨을 함께 할 자가 아닙니다. 공은 한 마음으로 나라를 받들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공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라며 둘 사이를 이간질합니다. 이에 척준경은 국왕의 편에 서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이자겸과 그의 세력을 체포하였습니다.

 

인종은 이자겸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들에게 유배형을 내리고, 왕비였던 이자겸의 3녀와 4녀도 궁에서 내쳤습니다. 이자겸과 결탁하여 악행을 저지르던 세력들 또한 대거 좌천되거나 귀양을 떠났습니다. 이로써 인종 즉위 후 4년간 국정을 농단해 오던 이자겸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자겸은 그해에 영광의 유배지에서 죽고, 척준경도 그가 세운 공을 믿고 설치다가 정지상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죽었습니다. 이로써 경원 이씨의 외척 세력은 몰락하고 왕정은 복고되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국왕의 권위가 떨어지며 문벌 귀족 사회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자겸의 사돈이자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던 무장 척준경이 깊이 관여하였기 때문에 '이척의 난'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자겸의 난'을 시작으로 묘청의 난, 무신정변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며 고려 문벌사회는 힘을 잃고 붕괴되어 버립니다.

 

고려시대 대표적 문벌
⋅ 경원 이씨 - 이자겸
⋅ 해주 최씨 - 최충
⋅ 경주 김씨 - 김부식
⋅ 안산 김씨 - 김은부
⋅ 파평 윤씨 - 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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