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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3월 31일: 118년 전, 대한자강회 설립

해양맨 2024. 3. 31. 00:00

역사 속 오늘, 3월 31일에 일어난 일:

1146년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가 제2차 십자군 원정의 당위성을 설파하다. 루이 7세가 십자군에 참가하다.
1854년 - 일본이 미국과 가나가와 조약을 맺고 시모다와 하코다테 두 항구를 개항하다.

1906년 - 대한자강회가 설립되다.
1917년 - 덴마크가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를 미국에 2,500만 미국 달러에 양도하여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되다.
1970년 - 일본항공 351편 요도 호 공중납치(하이재킹) 사건이 발생하다.

 

오늘의 묵상: 대한자강회

1906년 3월 31일, 118년 전 오늘, 대한자강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는 애국계몽운동 단체로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로 한국이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윤효정, 장지연을 비롯한 개화 자강 계열 및 개신 유학적 인사들이 교육과 산업육성을 통한 자강독립의 실현을 목표로 결성하였습니다.

대한자강회는 1906년 3월 31일 장지연, 윤효정, 심의성, 박진수, 김상범 등 5인이 발기하였고, 4월 4일에는 발기인과 동지 20여 명이 모여 임시 임원진을 구성했습니다. 4월 14일 임시회에서는 윤치호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10명의 평의원과 10명의 간사, 그리고 고문으로 일본인 한 명을 선출했습니다.

 

대한자강회는 중앙에 본회와 전국에 25개 이상의 지회, 1,500명 내외의 회원을 가진 전국적 규모의 단체로서 과거 독립협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구성원을 보면 크게 윤치호를 대표로 하는 독립협회 – 헌정연구회 – 기독청년회(YMCA) 계열과, 장지연의 『황성신문』 계열, 윤효정을 중심으로 하는 공진회 – 헌정연구회 – 대한자강회 – 대한협회로 이어지는 계열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한자강회 월보 표지. 창간호는 1906년 7월 31일자로 발행되었고, 1907년 7월 25일에 발행된 통권 제13호가 마지막 호이다.

 

대한자강회는 한국정부와 통감부에 계몽적 활동 외에 어떠한 정치적 활동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승인을 얻은 후 ‘합법적’ 단체로 발족했습니다. 그러나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인한 고종의 양위가 일제의 강압적 수단에 이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대한자강회는 별보를 내고 각지에서 연설을 통해 양위반대운동과 배일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결국 대한자강회는 고종 퇴위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설립된 지 1년 4개월 후인 1907년 8월 21일 보안법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대한자강회는 제국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월보의 간행, 지회 설립 등을 바탕으로 교육과 식산흥업이라는 자강의 길을 분명히 제시하며 국민을 계몽하고 이를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대한자강회는 해산 이후 대한협회로 이어지면서 한말 애국계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대한자강회 설립취지서 일부

 

“무릇 나라의 독립은 자강 여하에 달렸다.

우리 대한이 종전에는 자강지술(自强之術)을 강구하지 않아

인민이 우매한 것에 갇히고, 국력이 쇠패(衰敗)해졌다.

 

‘자강지술’은 다른 것이 아닌 교육을 진작하고 식산흥업하는 것에 있다.

교육이 흥하지 않으면 민지(民智)가 미개하고

산업을 일으키지 않으면 국부(國富)가 증가할 수 없으니,

그런 즉 민지를 열고 국력을 기르는 길은 단지 교육과 산업의 발달에 있다”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의 회장을 지냈던 윤치호는 맹목적인 독립운동이 아니라 실력을 키워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강해지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싸울 수 없다면, 독립을 외쳐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가 강해지는 법을 모르는 이상, 약자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조선에 실망한 독립운동가', '조선인을 사랑했던 친일파'로 남게 되었습니다. 윤치호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거액의 국방헌금을 내고 각종 시국강연에서 일제 찬양과 조선인 동원을 촉구하는 등의 행위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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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12월 6일: 78년 전, 독립 운동가였던 친일파 윤치호 사망

역사 속 오늘, 12월 6일에 일어난 일: 1945년 - 윤치호가 80세의 나이로 사망하다. 1979년 - 최규하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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